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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Jan 19. 2018

내 손을 잡은 이유

ep23.

그리지_쓰니랑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그런 곳. 왜 있잖아. 간판으로 내세운 음식보다 다른 음식이 더 맛있는 그런 곳. 우리 동네에도 있다. 간판은 맥주집이지만 치킨이 맛있는 집.

어쩌다 알게 된 이 곳에서 우리는 가끔씩 들려서 치킨을 먹기 위한 맥주를 맛보곤 한다. 이날도 이 집 치킨이 먹고 싶었던 우리는 맥주집이지만 치킨이 맛있는 가게를 찾았다.


이 가게 벽 한 쪽에는 크게 스크린을 띄워져 있다. 계속 틀어져있는 이 스크린은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보는 맛이 참 쏠쏠하다. 아는 영화면 아는 영화인 데로 모르는 영화면 모르는 영화인 데로. 소리 없이 보는 영화의 매력이 또 있다.

우리는 미리 준비된 팝콘과 콜라를 야금야금 먹으며 무성영화는 아니지만 무성영화인 거 같은 기분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영화 The Sound Of Music(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엄청 애정하는 영화라 한 두 번 본 게 아닌 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마리아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씬은 마리아가 처음 가정교사를 하기 위해 대령의 집으로 가는 길 신나게 노래부르며 춤추며 달려가는 부분이다.


마리아가 모자를 쓰고 양손에 든 기타와 가방을 미친듯이 흔들면서 달려가다가 대령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집을 보고 놀라면서 노래가 갑자기 멈췄지.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펼쳐진 장면에 혼자 젖어갔다.

스크린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주인공 마리아가 대령 집 안에 있는 정원에서 밤늦게 혼자 산책을 하고 그 모습을 대령과 대령의 약혼자가 함께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곧 이들이 약혼을 깨겠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콜라를 쪽쪽 빨아 먹었다.

나는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앞에 있으니까 멍하게 자꾸만 손이 가는 팝콘을 먹기 위해 손을 가져갔다.

‘턱’

팝콘에 뻗은 내 손 위로 따뜻한 기운의 부드러운 피부가 닿는다. 그의 손이다.



“왜?”



잡힌 손을 바라보다 그에게 물었다. 나보다 큰 크기의 손을 갖고 있는 그의 손이 내 손을 움켜잡자 내 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잡아봤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대답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왠지 모를 로맨틱함을 느꼈다. 슬며시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고개가 갸우뚱 거려졌다.



“뭐야 그만 먹으라는 거야?”



내 생각은 뇌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바로 입 밖으로 나왔다. 아니면 정말 미친 듯이 빠르게 거치니라 제대로 거르지 못했거나.



“그냥 잡은 거야. 그냥 잡고 싶어서 잡았어.”



내 말에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하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잡힌 손을 빼서 아직 잡지 못했던 팝콘을 몇 개 손에 쥐고 입으로 가져갔다.


민망하면서도 좋은 기분에 눈썹이 위로 쫑긋 세워지고 입술은 한 쪽으로 없는 보조개도 생기게끔 쏠렸다. 눈은 게슴츠레 떠서 그를 흘겨봤다.


오물오물 거리며 팝콘을 천천히 씹는 내 입꼬리가 씰룩씰룩 거렸다. ‘툭툭’ 손에 묻은 팝콘 가루를 털면서 흐흐흐 나오는 웃음을 느꼈다.

스크린에서는 마리아와 대령이 노래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 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의 노랫소리가 내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So somewhere in my youth or childhood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Nothing comes from nothing Nothing ever could
So somewhere in my youth or childhood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그리지_쓰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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