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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Jun 12. 2018

“그래도 예쁘니까”

ep31.


그리지_쓰니랑



심통이 났다. 자세한 어떤 이유를 말하기는 어려웠다. 정확한 마음을, 심통이 난 나의 심리상태를 나 조차도 몰랐었으니까.


‘왜 그래’라고 묻는 그의 물음에도 내가 왜 심통이 났는지 말해 주기가 어려웠다.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난 코로 한숨만 크게 쉬었다.


우리가 걸어가던 길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평상시에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스물스물 올라오는 짜증에 지쳐있는 나는 터덜터덜 에스컬레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내 앞에 서서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평상시보다는 서로의 얼굴이 가까운 그 순간, 그가 또 물었다.  


너무 얼굴을 마주 대고 바로 물어보는 그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짜증 나서 그래’라고만 말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쪽’ 


심통이 나있는 나를 잠시 지긋하게 바라보던 그가 눈 바로 밑 아니 눈과 볼 사이 그 애매한 지점에 뽀뽀를 했다.


이상한 타이밍에 이상한 위치 선정 스킨십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지만,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가득 풍기며 가깝게 다가오는 그의 행동은 순식간에 나를 녹였다.   


한번 뽀뽀를 하고 난 그는 잠시 내 분위기를 살피더니 다시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이번에는 뺨과 코를 걸친 위치였다.


왜 이렇게 애매한 위치에 뽀뽀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뒤에 마구마구 몇 번 더 쏟아지는 뽀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볼에 뽀뽀해주는구나’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뽀뽀를 해주는구나’라는 마음이 들게 해주는 행동이었다.


이상한 분위기에서 하는 생뚱맞은 뽀뽀지만 ‘지금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서 뽀뽀를 해주는구나’라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그의 마음이 나도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이제까지 심통 부리다가 갑자기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싫은 척 하기도 어려우니까 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고 몸이 풀리는 따뜻한 그의 입맞춤에 튀어나왔다 느껴졌던 입술은 제자리를 찾았고 찌푸려져 있던 인상은 판판하게 돌아왔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도달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자마자 그가 내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며칠이 지난 후였다. 통화를 하던 중 불현듯 그때의 일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때 왜 갑자기 뽀뽀했어?’ 당시의 스킨십을 떠올리며 두 뺨이 붉어지는 쑥스러움보다 궁금증이 앞섰다.


그리고 폰 너머 그의 목소리로 들려온 대답은 또다시 나를 녹였다.




“그냥 그래도 예쁘니까”


“그냥?”


“응 그렇게 짜증 부리는데도 예뻐서”




그리지_쓰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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