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쓰니 May 08. 2018

너 기다리고 있지

ep29.

그리지_쓰니랑



사소한 한마디에 설레는 게 여자의 마음이라 누가 그랬던가.


모든 여자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유독 이런 말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듯 던지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울렁울렁.


달콤한 멘트를 날리는 다정한 사람을 안 만나본 것도 아닌데 툭 던지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이 설렘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꼭 영원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그 순간.  



우리가 인연일까.


섣부른 판단이려나. 어떤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고, 긴 인생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건 정말 아까워서 놓치지 못하겠다는 것.




나는 대중교통을 타면 멀미를 하는 스타일이다. 매번 멀미를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날은 유독 멀미가 심했던 거 같다.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람이 가득 찬 버스 안에서 나는 심한 멀미를 느꼈다.  


평상시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쉼 없이 연락하는 우리였지만 이 날 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폰을 확인하지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가방에 넣어놨다.


집에 도착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느낌이 들 정도의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야 온 몸의 혈액순환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식은땀이 나며 메슥거리던 속이 진정되어 가기 시작했다.


몸이 편해지니까 그제서야 가방 구석에서 아직 꺼내지도 않은 폰이 생각났다.  


우리 집 근처에서 헤어졌기 때문에 1시간이 넘게 전철을 타고 가야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폰을 확인했다. 잘가라는 그의 메시지가 와 있음을 확인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메시지는 없었다.  


혹시 내가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해서 섭섭하려나. 물론 내가 아는 그가 그렇게 느꼈을 일은 없지만 나였으면 섭섭할 거 같아서, 헤어지자마자 연락 하나도 안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외로울 거 같아서. 마음이 급해졌다.



“어디야?”

“모해?”



나는 조급한 마음을 붙잡고 손가락을 빨리 움직여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언제나 내 연락에 금방 답을 한다. 이때 내가 보낸 ‘어디야’, ‘모해’라는 메시지의 숫자 1도 금세 사라졌다.



“기다리고 있지”

“너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지”



연속으로 2번 보낸 내 물음에 다 답하기라도 하듯 그는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2번 연속으로 보내왔다. 나도 모르게 꽉 다물고 있던 입술이 서로 떨어지며 입 안에 머물고 있던 숨이 새어 나왔다. 주변의 공기가 잠시 멈췄다. 그 순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울렁.


감동적인 내 기분과는 다르게 속이 갑자기 또 안 좋아지는 것 같은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울렁.


이미 끝나서 다 내려간 줄 알았던 가슴 아래 울렁거림이 다시 시작됐다.  


울렁.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멀미가 나 아직 안 끝났다고 괴롭히는 건지, 과한 두근거림이 갑자기 신체적인 변화를 일으켜서 울렁거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전 03화 "어디 안 간다고 안심시킬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