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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Apr 03. 2018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

ep27.

그리지_쓰니랑



연애를 하는 남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나는 체력이라 생각한다. 진심, 배려, 사랑이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체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소용없다.


체력이 없는데 내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 것이며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배려를 할 것인가.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체력이 없다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줄 여유도 남아있지 않을 터.

체력은 모든 일의 기본이고, 근본이다.

나는 그렇다. 상대방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서 나와 만나고 나 역시도 나의 금쪽같은 시간을 내서 사람을 만난 것.


그만큼 서로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만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상황에 이런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친구나, 연인, 지인 등에 만남에 합의한 관계에서만 한정된 논리다.

그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준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만의 배려다.

이러려면? 당연히 체력이 좋아야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이런 배려는 남자 친구를 만날 때도 적용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의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니까.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된다.

그러려면? 체력이 좋아야 된다. 에너지가 있어야 된다. 단 하루 만나고 말 거 아니니까. 가끔씩 만나는 사이도 아니니까. 더욱더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무슨 엄청난 저질체력으로 비춰지지만 그런 건 또 아니다. 그저 나의 체력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많고, 남자 친구를 만날 때만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고!

게다가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케줄에 몸이 최적화된 그런 스타일.


남자 친구는 보통 퇴근을 하고 난 후, 또는 주말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좀 하고 점심 이후에 만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이미 꽤나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 이후에나 만날 수 있는 것.


이런 나를 그는 많이 이해해준다. 아니 이해해주는 정도를 넘어 나의 체력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있다.


하지만 이 날은 주말이었다. 그는 날 이해해줬지만 유독 피곤해진 나에게, 내 체력에 스스로 속상한 그런 날이었다.


평일보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일 내내 일하다가 주말에 제대로 쉰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만나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체력 방전을 가리키는 빨간불이 깜빡깜빡 거리는 신호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오후 1시쯤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노닥노닥 수다를 떨다가 미리 예매해놓은 영화를 보고, 풀린 날씨에 감탄하며 오랜만에 놀기만 한 여유로운 하루를 즐겼다.


최근 다른 날들에 비해 덜한 미세먼지 없는 날씨에 감사하며 동네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니 점점 더 붉게 물들던 해는 강한 주황빛을 내뿜으며 산 뒤로 넘어갔고, 주인 없는 하늘에 지배자가 된 어둠이 서서히 골목 구석구석 손을 뻗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편하게 웃고 떠들면서 놀기만 했는데도 저녁이 되니까 피곤이 슬슬 올라오는 거 같았다.


조금만 지나도 잘 시간이거니와 내일 출근해야 되는 압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운동부족으로 인한 체력의 부제 때문 일까. 곧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지는 멍한 순간이 찾아올 거 같았다.


“몇 시야?

“아직 8시는 안됐어”

“그럼 오늘은 그만 집에 갈까?”

“음… 그럼 카페 갔다 갈래?


그의 제안에 살짝 고민한 나는 목이 마른 거 같기도 하고 카페에서는 어차피 앉아서 쉴 수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좋아’하며 근처 카페를 찾았다.


날이 풀렸다고는 했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쌀쌀했다. 밖을 돌아다니다가 따뜻한 카페에 앉아있으려니 잠이 솔솔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잠투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만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멍한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난 음료를 주문하고 내 옆에 앉은 그를 보며 말했다.



“너 헤어지기 아쉽구나”


“왜?”


“또 카페 오자고 하고 그러니까”



말을 내뱉고 보니 정말 그랬다. 우리는 오늘 이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시간 상 집에 가도 될만했다. 특히나 평상 시라면 피곤해 보이는 나에게 빨리 집에 가서 쉬라고 배려해주던 그가 집에 가자는 나의 말에도 커피 한잔 마시고 가자는 제안을 할 정도라니. 게다가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이거 정말 헤어지기 싫었던 거 아닐까.


그런 나의 말에 그는 새초롬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확인받는 거야?”



맞구나. 맞네. 알면서도 몰랐던 사실. 몰랐으면서도 알았던 사실.


이렇게 우연하게 흘러나온 의식 없는 나의 멘트에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확인받는 거냐’는 그의 말이 왜 그렇게 달콤하던지. 흘깃 쳐다보며 짓는 새초롬한 표정이 왜 그렇게 귀엽던지.

남녀 사이에 체력은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체력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체력이 부족해서 에너지 좀 없으면 어떤가, 내가 지금 좀 힘들어서 혹시라도 상대방이 ‘자기랑 있는 시간이 재미없는 건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건가’ 하는 그런 오해를 하게 될 일을 걱정하는 평상시의 내 생각은 처참히 부셔 버려주는. 그런 착각을 할 일이 없는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에게.


남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거는 ‘사랑’ 이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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