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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May 22. 2018

예쁜 거 지겨워서 귀여운 척하니

ep30.

그리지_쓰니랑



회사에서 있을 때는 힘들고 무기력해도 퇴근만 하면 초롱초롱해지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퇴근하면 지치고 피곤해서 잠만 오는 사람도 있기 마련. 나는 후자다.


게다가 그와 함께 있으면 비교까지 되어버려서 더 쉽게 피곤해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나보다 체력도 훠월씬 좋고, 건강하고, 어리다. 그가 체력이 떨어져서 힘들어하거나 지쳐하는 모습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렇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나는 체력이 약하고 쉽게 피곤한 사람이다. 아마도…  


힘들긴 힘들다. 정신줄을 놓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특히나 퇴근을 한 후에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심하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몸이 찌뿌둥하고 졸음이 살짝 밀려왔다.  


나는 별생각 없이 얼굴 근육을 움직여 조금의 시원함을 추구했다. 인중을 늘리는 그 표정을 아는가. 보기는 좀 그렇지만 당사자는 아주 시원한 그 얼굴 근육 늘리기. 나는 뭉쳐있던 얼굴 근육이 풀리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괜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살짝 민망한 마음+부끄러움으로 인한 오기랄까.  


나는 그에게 내 얼굴을 들이댔다. 그리고는 더 오버스럽게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미친 듯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넘겼다 왼쪽으로 넘겼다. 긴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머리 방향에 따라 한 쪽으로 쏠렸다. 예쁜 척하는 일그러진, 참 못난 얼굴이었다.


그는 그런 나를 무표정으로 아니 조금은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당황스러운 걸까 정 떨어진 걸까. 괜히 오바했나. 내 행동에 대해 후회하려고 하는 찰나였다.


툭.


무심한 듯 그가 던진 한마디는 살짝 밀려오려던 내 후회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공공장소에서 ‘푸하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어어어”


나는 계속 웃으면서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날 집으로 와서 내 침대 위에서 눈을 감았을 때까지 내 귀에서는 계속 그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심인지 이상한 행동을 귀엽다고 표현한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상황에서 들을 수 있는 세상 모든 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는 것.  


오늘따라 유달리도 강하게 무장한 달빛이 방 창문으로 들어와 감은 내 두 눈을 시리게 했다. 저 멀리 떠 있는 달이 뿜어내는 빛이 따뜻할 수도 있음을 느꼈다. 커튼을 굳이 치진 않았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아까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쁜 거 지겨워서 귀여운 척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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