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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Jun 28. 2018

첫 경험

ep32.

  

그리지_쓰니랑




남자든 여자든, 모든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 외에도 가정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정환경의 영향은 100%다.”에 손을 들지는 않겠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견에는 한 표를 던지겠다.


어렸을 때는 그랬다. 환경보다 본인, 자신 의지의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니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부모라도 자식만은 그 부모를 이해하는 거 같더라. 아니 이해해야 하는 것 같더라.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는 게 맞는 거 같더라.  


부모가 무슨 행동을 했든 간에.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이라면 불효자일 테고, 이해하는 자식이라면 그 역시 그렇게 행동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난 가정환경은 무시할 수 없다 생각한다.



이런 가정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리 아빠는 화를 내시지 않는다. 소리를 높이는 법도 없으시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남자라면 자기 여자에게 화를 내면 안 되고, 자기 가정에서 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우리 아빠가 그런다!  


내가 보기에 우리 아빠는 타고나게 화가 없는 사람이다. 화가 나는 걸 참는 게 아니라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으신다. 화가 안 나는 건지 뭔지, 밖에서는 어떠신지 잘은 모르겠지만 평생을 살아오면서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그런 남자를 원한다. 타고나게 화가 없는 사람. 나에게 화도 짜증도 내지 않는 사람.


연애할 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면 당연히 결혼해서는 더 심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연애할 때는 특히나 더 화를 내서도 짜증을 내서도 안된다는 생각은 살면서 더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아직까지 내가 보기엔. 아니 이 날까지는 그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만나 오면서 그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내는 시늉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짜증낸 날이었다.


그래 내가 예민하긴 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짜증을 내고 그의 신경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를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그가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에서 내가 계속 짜증을 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냥 좋지 않은 타이밍에 유독 심했던 예민함이 문제였을 뿐.


어쨌든 그 순간에 우리는 진지했다.  



사건은 이랬다. 이 날 그와 나는 옷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떤 랩 스커트를 마음에 들어하는 나에게 그는 “이거 너 있지 않아?”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 소리에 나는 짜증이 확 났다.


오늘 옷을 구경하면서 내가 고를 때마다 ‘이거 너 있지 않냐’는 그에게 (사실 2번 그랬지만… 난 2번째에 짜증이 났다.) ‘그럼 사지 말라는 거야 뭐야 내가 내 돈으로 사는데 뭐야’라는 삐뚤어진 마음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드니 그 옷을 사고 싶겠나. 나는 온몸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옷을 ‘탁’ 하고 걸어놨고 그는 나를 보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거 예쁜데, 마음에 든다며”

“그럼 뭐해 네가 계속 뭐라고 하는데!”



내 신경질적인 말투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내 짜증스러운 말투에 이제는 그도 짜증이 난 거 같았다.


처음 보는 거 같은 그의 표정에 살짝 멈칫했지만 짜증이 날 데로 나있었기 때문에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 열 받네”


가게를 앞서 나가던 그가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내뱉었다.


‘헉’했다.


그 다음 웃기게도 난 화가 났다. 지금 화내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까지 인가.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휙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앞서 가던 그는 뒤따라오던 나를 잠시 기다리다 걸음을 맞추며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다정함이 가득 풍기는 손깍지에 머리 끝까지 올랐던 화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머리를 달구고 있던 뜨거운 화는 가라앉으면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마, 눈, 코.

천천히,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갔다. 뜨거웠던 열기 때문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온몸에 따뜻함이 확 퍼졌다. 그래서 눈도 빨개졌을 거다.


짜증이 풀린 건 아니었다. 뭐랄까.


‘아 열 받네’ 하면서도 내 손을 꼭 잡고 있어서,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에는 자기 팔로 내 손을 꽉 끼고 있길래.

그래서 나도 차마 손을 뺄 수는 없길래.

그래서 풀린 건 아니었지만 풀린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길래.

그랬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더라.



우리가 만나면서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보여준 짜증은 : 짜증이 나면서도 짜증이 나지 않는 그런 묘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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