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처음에는 그랬다. 나 좋아 죽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처음에 그가 날 그렇게 좋아한 게 아니었구나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컸고, 안 아팠다고 말하기엔 거짓말이었다.
입 안에서 요리조리 돌려 먹고 있던, 아직은 꽤나 큰 네모난 얼음을 끽하고 잘못 움직인 오른쪽 혀 안쪽의 실수로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간 순간처럼.
꿀꺽 침 한번 삼키는 시간 내에 언제 넘어왔냐는 듯이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 내 목구멍에 남아 있는, 이 역시 금방 나아버릴 생채기 같은 아픔.
그 날은 그와 함께 맞이한 3번째 선선한 기운이 가득한 가을에 들어선 날이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점점 날 더 좋아해 주고, 잘해주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너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괜찮은 남자라니. 정말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만의 기분에 취해, 콩깍지를 무시하면서도 인정하는 나 자신에 취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따뜻한 가을 햇빛을 느끼고 있던 그때. 갑자기 쎄 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달아오르지도 못 할 만큼의 민망함과 목덜미가 쭈뼛거리는 오싹함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살짝. 아주 살짝이지만 두근거리는 심장도 오싹거림 손을 잡고 끌려왔다.
“사람 관계에는 리듬이 있잖아. 엄청 좋아지는 시기가 있고, 약간 덤덤해지는 시기가 있고, 실망하는 시기도 있고 그런 리듬. 그럼 너는 우리가 만나온 시간 중에서 언제 나를 제일 좋아했어?”
“음… 지금”
내 질문에 살짝 고민하는 것 같던 그는 생각보다 빨리 답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잠시 내가 목표한 질문의 의도를 잊을 만큼.
“네 생각에는 내가 언제 너를 가장 좋아했던 거 같아?” 그가 되물었다.
“내 생각에도 지금이야” 그의 질문에 나 역시 빠르게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게 소름이네. 나는 처음에 네가 나 좋아 죽어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 만나다 보니까 점점 더 좋아해 주는 게 느껴진단 말이야? 그럼 사실 너는 처음에 나를 그렇게 미친 듯이 좋아한 게 아니란 거잖아?!”
“첫눈에 마음이 가긴 갔지만 어떻게 사람이 몇 번 만나보지도 않고 좋아 죽겠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겠어”
“나는 그런 줄 알았지! 완전 내 착각이었네”
‘날 너무 좋아해서 안 만나주면 큰일나는 애’로 그를 만들어버렸던 그 시절의 나를 향한 책망과 부끄러운 착각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이런 내 표정과 말에 그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나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해가 있었네. 처음에는 그냥 호감이었어. 그리고 점점 더 좋아졌고, 널 좋아한 순간 중에 지금 널 제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