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
친구 덕분에 즐거웠고, 친구 때문에 상처받았고, 친구 덕분에 한층 더 성숙해졌으며, 친구 때문에 많은 게 변한 지금.
지금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는 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다. 게다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건 더욱더 의미 있다 말할 수 있겠지.
이 날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지금까지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는 친구들과 그의 남편, 남자 친구까지 처음으로 다 함께 모인 자리였다.
한창 철인 대하도 먹고, 대하 머리도 버터에 튀겨먹고,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던 자리만큼 시곗바늘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돌고 돌아 밤 12시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3차까지 자리를 옮긴 우리는 아직도 사람들로 가득 찬 한 가게에 앉아 맥주에 노가리를 뜯으며 잔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한 친구의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지석이는 취미가 뭐야?”
나는 그의 하루를 곰곰이 돌이켜봤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까지는 일을 하고, 그러고나서 자기 전까지 공부를 하고 잠깐의 운동을 하고 다시 잠에 들지. 그리고 이런 그의 하루는 거의 반복되어 돌아가고 있다.
나는 이런 그의 상황을 설명하며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즐기고 있고, 공부도 즐기면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그는 그랬다. 하루 종일 일하고 공부하는 걸 힘들어하지 않았고, 그 상황을 정말 즐기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런 거 말고 그 왜 있잖아, 아무런 이익도 없고 생산적인 활동도 아니고, 쓸데없이 시간을 소모하지만 단순히 좋아서 하는 일. 그 일을 함으로써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그런 거 말이야”
친구 남편이 정의해준 취미에 대해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의 취미가 뭐였더라... 계속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
그나마 떠오른 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취미라고 할 수는 없다. 한 번씩 내 글에 대한 그림을 그려줄 뿐이지 ‘취미’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음… 음…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쯤 그가 자리에 돌아왔다.
나를 향했던 질문은 그대로 그에게 돌아갔다.
“취미요?”
“응 너는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마시고, 게임도 안 하고, 우리처럼 스포츠 경기를 즐겨 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단순히 좋아서 하는 그런 행동이 없는 거 같아서”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좋고,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공부도 저에게 필요한 거니까 좋고”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냥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고 단순히 좋아서 하는 일”
내가 생각했던 답을 하는 그에게 친구 남편은 다시금 정확히 취미에 대한 정의를 내려줬다. 그런 정의에 잠시 고민하던 그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는 데이트하는 거요”
평소에 잘 마시지 않은 술을 마셔서 인지,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 때문에 몰려왔던 피로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멀리서 오고 있던 살짝 띵한 두통과 온몸을 지배한 피곤함에 묻혀있던 내 정신이 갑자기 ‘탁’하고 환하게 켜졌다.
“이런 대답을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지석이 취미는 너를 만나는 거였네. 고맙지 내가"
그의 말에 '하하하' 웃음이 터진 친구 남편은 이미 행복함에 터진 나를 보며 말했다. 나 역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취미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순간이, 하루하루 열심히 삶을 살아가면서 제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이득도 바라지 않고 단순히 좋아서만 하는 일이 나를 만나는 거라니.
그 순간 뛰었던 내 심장은 오랜만에 마신 술에 감당하지 못한 두근거림 지수 130%, 훅 치고 들어온 감동에 찡한 지수 130%, 너무 설레서 떨리는 지수 130%.
그리고 예상치 못한 로맨틱한 그의 말에 너무 좋아서 행복한 지수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