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
진짜 누가 봐도 못생긴 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매일 보던 얼굴보다 심각하게 못생긴 그런 날.
이런 날에 연인들은 무슨 말을 할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게 더 이상한 그런 경우 말이다.
나는 화장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미팅이 있지 않는 이상 대부분 날들을 선크림 정도만 바르고 회사를 다닌다.
화장을 하더라도 얕게 하기 때문에 화장을 한다고 해서 엄청 예뻐지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두껍게 한다고 예뻐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 비슷비슷하다. (이런 나를 보고 내 동생은 ‘그냥 화장을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려줬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내 쌩얼에 더욱 익숙하다. 쌩얼이라고 해서 ‘오늘 왜 이렇게 심각하냐’, ‘오늘 아파보이네’ 이런 느낌은 거의 안받는다. 내 생각에 내 얼굴 상태 바이오리듬은 매일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그냥 매일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느낌의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 쌩얼이 어색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날은 갑자기 회사 거울 속에서 보여지는 내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정말 너무너무 유독 못생긴 내가 퀭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칙칙하게 어두워진 낯빛에 푸석해보이는 입술, 정리되지 않은 눈썹, 하루종일 받은 모니터 전자파에 지친 눈빛 등 모든 이목구비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나 좀 봐봐. 신경 안 쓰니까 나 이렇게 안 좋아’라며 관리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이 날 나의 못생김은 어느 누구 하나 빼 놓지 않고 각자 한몫씩 도움을 줬다. 부시시한 머리카락에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은 얼굴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매일 부시시하게 풀고 다녔던 파마 머리 스타일도 오늘 따라 왜 질끈 묶어서 착 가라앉혀놨는지 모르겠더라.
이건 정말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규정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내 잘못.
‘오늘 상태가 영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곧 퇴근 후 만나기로 한 그를 떠올리면서 쿠션 팩트라도 찍어 발라야지 다짐했다.
이런 날은 화장을 해도 못생김이 나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피부톤이 좀 더 밝아지면 지금보다는 나을 거란 기대를 해볼 수 있었다.
‘오늘 왜 이렇게 못생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확인했다. 휑했다. 그제서야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방의 무게가 느껴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이런 속담은 도대체 누가 지었을까. 진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우리나라 속담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걸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하필 이런 날 급하게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또 뭘까 오전에 갑자기 약속을 잡지만 않았어도 이 못생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됐을텐데. 방법이 없었다. 그저 오전의 나를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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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그는 나의 못생김을 못본 척 했다. ‘오늘 힘들었지’ 정도의 멘트만 했을 뿐.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찝찝한 마음에 카톡으로 우적우적 구겨놓았던 속마음을 보내버렸다.
“오늘 나 너무 못생겼지. 오늘따라 유독 못생겼더라고. 근데 파우치는 놓고 왔고, 로션도 없으니까 세수를 다시 하기도 좀 그렇고 방법이 없었어.”
그리고 그가 보내온 답은 못생김에 대해 찝찝하고도 움츠러져있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여주었다.
예상했던 ‘예뻤다’는 거짓말도 아니었고, ‘맞아 오늘 왜 그랬지?’ 라는 인정하는 멘트도 아니었다. 솔직하면서도 배려해주는 그의 말은 날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맨날 예뻐도 머리 아픔! 그래도 못생긴 건 아니고 평소에 못 미쳤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