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혹시 임신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성과 부족으로 권고사직을 당했을까?
이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다.
정말 성과 부족일 수도 있잖아?!
물론 아닌 건 맞다.
데이터가 그걸 증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프로젝트는 기획안대로 결과가 나왔고 아직 단 하루도 운영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임신을 했기 때문에 권고사직을 당한 건 맞고, 임신을 해서 일을 못했다고 솔직한 평가를 당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에 평가당한 게 맞다.
난 15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초봉은 월 80, 연 960만 원이었고
마지막 최대 연봉이 7000만 원이었으면
열심히 하지 않고 서는 이뤄낼 수 없는 성과 아닌가?
내가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실력을 증명해 내면서 연봉을 up 시킨 거다.
그래서 정말 단 하루도 멍 때리면서 회사를 다닌 적이 없는 거 같다.
한 이커머스 회사에서는 월 200만 원 매출이 나왔을 때 입사해서 단 한 명 있는 마케터로 3년 만에 월 10억까지 기록시켰고,
데이터 성과별로 6개월에 한 번씩 연봉을 협상하던 한 회사에서는 1년 만에 3번의 연봉 협상을 거쳐 초봉 대비 50%의 연봉을 올렸다.
직장인이라면 아주 잘 알겠지만 연봉협상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이직한다고 해서 연봉이 무조건 상승한 것도 아니다.
가장 안 주려고 할 때가 바로 이직 후 연봉협상 때다. 흠 아니다. 특정 시점은 없다. 회사는 언제나 안 주려고 한다.
연봉을 상승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한 회사에서 실력을 증명해서 연봉을 상승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랬거든.
즉, 나를 계속해서 증명해 내야 한다.
그랬던 삶을 살았던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
주말도 반납하고 야근은 불사하고 대표의 불륜 애인이라서 열심히 일한다는 오명까지 당해가며 일했던 결과는 임신으로 인한 권고사직이다. 인생 참.
이래서 직장인은 열심히 일할 필요 없고, 대기업이 최고인 것일까.
옛날 어른들 말씀 틀린 건 정말 하나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업무를 해가면서 살아와서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육아휴직 전 직장인의 마지막 커리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
지금 결과가 임신하자마자 임신 초기에 권고사직을 당한 거기 때문에 어쩜 지금까지의 직장인으로서 삶이, 마지막으로 이직했던 이 회사의 선택이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하다.
다른 회사를 선택했더라면 지금 난 산전육아휴직이 아니라 회사를 잘 다니고 있을 테니까,
이렇게 좋은 임신 중기 컨디션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출산 마지막까지 내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을 테니까!
아? 혹시 이게 운명일 수는 있겠다. (나는 운명론자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계시,
지금 정도에서 살짝 멈춰서 더 이상 회사에 열심히 일해주지 말라는 계시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리고 사실 업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싶은 계획적인 시기기도 했다.
물론 육아휴직 이후의 생각한 일이었지만 한 1년쯤 빨리 해버리게 되는 이 상황에 조금 당황스럽지만 오히려 생겨난 시간에 내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오히려 좋기도 하다.
그래 어차피 지금 임신해서 스트레스받는 것도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본능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합리화가 아주 잘되고 있는 거 같다.
나의 한편에 자리한 솔직한 심정은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
커리어를 더 알차게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타이트하게 출산도 육아도 잘하다가 또 복직해서 착착 쌓여가는 커리어를 갖고 싶었다.
상황은 그렇게 되지 못한 거 같지만. 어쩔 수 있나 내 팔자가 이렇게 흘러가는 방향인가 보다 생각해야지.
그니까 난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인으로 일한 그 기간 동안에는 회사의 성과를 위해 열심히 일했었다.
그래서 이번 권고사직이 임신으로 인한 권고사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살짝의 다른 의견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진짜 임신해서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