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서울대 놈들은 왜 그렇게 걷는가
엊그제 보일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사람을 불렀다. 건장한 남자 두 명이 한 시간 정도 집에 머물다 갔다.
그들은 온다고 한 시간보다 90분이나 늦었고, 그사이 나는 두 번이나 재촉 전화를 한 탓에 분위기는 적대적이었다.
집에 가족이 아닌 남성, 그것도 건장하고 적대적인 남성의 방문을 받으면 마음이 종일 불안해진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가가 쿵쿵쿵쿵 울린다.
일종의 정신병 같은 것이어서 견디는 수밖에 없다. 홀가분하게 사는 대가를 불안으로 치른다고나 할까.
그 와중에 윗집 어린이가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뛰었다. 쿵쿵쿵쿵. 실체를 얻은 불안이 내 머리를 밟아대는 듯한 기분에 자다가 놀라서 깼고, 진정하기 위해 법문을 틀었고, 아이의 부모가 소리를 질렀고, 아이는 자지러졌다.
모두, 견디는 수밖에 없다.
*
여섯 시간도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강의를 하러 갔다. 두 시간을 떠드느라 목도 쉬고 배도 고프고 졸리기도 했다.
영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려니 불안에 더해 외롭고 서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
친구와 7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었다. 컨디션이 안 좋다느니, 불안하고 서럽다느니 하던 것은 다 뻥이었다.
우울함이라는 거, 친구와 양꼬치를 먹고 연어장을 먹으며 트럼프부터 친구네 회사 상사까지, 한 명 한 명 씹어나가면 흔적도 없이 삼켜지는 감정이었다. 하마터면 또 기분에 속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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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도 이래저래 쌓인 게 많았는지 회사 놈들을 잘근잘근 씹다가 불똥은 급기야 회사의 서울대 출신에게로까지 튀었다.
그들이 걸음걸이부터 다르다고 했다. 어깨죽지를 내저을 때마다, 정강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비대한 자아가 디룩디룩 뿜어져 나온다고 했다.
너무 웃겨서 바닥을 길 뻔했다.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다녔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비싼 팬티를 입은 것과 같아서 어떻게든 팬티 라벨을 보여주려다 보니 걸음걸이부터 이상해진다. 팬티는 그들의 자아이고 그들의 팬티는 비대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십 대 땐 걸음마다 자아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도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니, 하나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모양 이 꼴로 살면서도 열등감이 없지. 다 비대한 팬티 덕분이다.
그런데, 자아가 비대하면 불안 강박도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가지가지 한다. 그래서 가지 튀김을 좋아하는가 보다.
*
지하철 승강장에서 헤어지는데 친구가 잘 가라며 생전 안 하던 포옹을 해줬다. 나는 신체 접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나 오늘은 옷을 두툼하게 입어서 괜찮았다.
실은, 괜찮은 것 이상이었다. 수다로도 녹이지 못한 마음의 찌꺼기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랄까?
포옹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군!
그러므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서러운 기분이 들면 나가서 가지 튀김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포옹을 하면 된다. 포옹할 친구는 밥값을 낸다고 하면 한 다스로 생기니 걱정할 것 없다.
아무튼 기분에 농락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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