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치과 가는 날이다. 오리 보는 날이라는 뜻이다.
오리는 작년 말부터 시작된 나의 고통스런 치과 여정의 유일한 기쁨이다. 지금은 신경 치료를 받고 있는데, 오리가 잘 있나 보고 싶어서 치과 가는 날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참고로 난생처음 신경 치료를 받으며 ‘신경을 긁는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됐다. 그것은 상대의 코싸등이에 힘껏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뜻이다.
*
신경을 긁는 의사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나의 기쁨, 나의 영웅을 보기 위해 개천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세상에! 개천엔 ‘그대 그따위로 살 것인가?’가 서 있었다.
오리 무리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고고하게 천을 거닐던 녀석은 이내 눈보다 흰 날개를 펼치더니 미끄러지듯 공중을 날아서 가버렸다.
선과 움직임, 어느 것 하나 우아하지 않은 게 없었다. 인간 중에도 저렇게 우아한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예쁜 것들은 언제나 혼자지.
보아라, 양지바른 둔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볕을 쬐고 있는 나의 게으른 오리들을!
그들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이 절정의 아름다움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엔 간만에 비치는 햇살이 너무 나른했으니깐.
나도 오리가 되어야지!
뚱뚱하고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앉아 예쁘고 도도한 것들을 무감한 시선으로 응시하다 낮잠이나 자야겠다.
*
참고로 ‘그대 그따위로 살 것인가?’의 진짜 제목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러나 ‘그대 그따위로 살 것인가?’로 검색해도 영화 정보는 제대로 나온다.
또 영화에 나온 새는 백로가 아니라 왜가리다. 백로도 왜가리과 동물이긴 하지만, 사진을 보면 둘의 인상이 전혀 다르다.
왜가리는 안광 없이 족제비를 사냥해 먹는 녀석이고, 백로도 가끔 쥐도 먹고 새끼 새도 먹는데, 안광은 있을 것이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754450922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치과 #신경치료 #백로 #왜가리 #오리 #그대그따위로살것인가 #그대들은어떻게살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