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1 해남 7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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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주일 동안 멀리서 보기만 하던 섬을 갔다. 섬은 두 개로 돼 있는데 가까운 게 노화도, 먼 게 보길도다. 이곳은 해남이 아니라 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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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내릴 때까지 아저씨들의 잔소리를 들었다.
혼자서 어찌케 다닐라고...
차 없이 어찌케 다닐라고...
해남에 오고 나서야 내가 굉장히 눈에 띈다는 걸 알았다.
여기선 혼자 다니는 여자도 없고, 차 없이 다니는 여자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렌지색 등산재킷이 너무 현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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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도 항구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흔한 카페 하나 없다. 모든 것은 섬 끝부분에 있다. 끝에까지 차로 가면 13분인데, 걸어가면 두 시간이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그렇게 걱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산 다니는 사람한테 두 시간 걷는 건 일도 아니지. 빵집을 목표점으로 설정한 후 안광을 빛내며 두 시간을 내려갔다. 빵, 빵집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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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식당은 어디서도 1인분을 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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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당에 들어갔을 때 아저씨 세 분이 날 보고 “저 아가씨네!”라면서 알은체를 했다. 배에 같이 타고 왔나 보다. 그리고 내 얘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빌어먹을 오렌지색 등산재킷.
사장님한테 “백반 하나요~” 했더니 “하나는 안 돼요~”하셨다. 역시나. 그때 아저씨들이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쫌 해주쑈!”
내가 당황하여, “괜찮습니다”하고 일어서니까 아저씨들이 다시 말했다.
“그럼 이리 오쑈”
그러면서 자기들 테이블에 있는 빈자리 하나를 가리켰다.
됐쇼! 됐다고!
전라도 아저씨들은 굉장히 정의롭고 선의가 넘치는데 눈치는 없다. 혼자 온 여자는 시커먼 아저씨 셋이서 대낮부터 국밥에 술 말아 재끼는 테이블에 합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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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 가서 밥 좀 주라고! 했더니 한 분이 밥을 주셨다. 이 바다 한가운데서, 낡고 때 낀 비닐 천막 안에 갇혀 전복 비빔밥을 먹었다. 맛은 있었다. 그러나 원하는 뷰는 아니었다.
불현듯 진솔이네가 그리웠다. 물회 한 그릇 팔면서도 온 가족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는데. 진솔이네도 내 생각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후락한 곳에서 비빔밥 하나 먹은 경험을 가지고 내 고향 땅끝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결국 보길도까지 가기로 했다.
대교 2개를 30분간 건너서 아랫섬, 보길도에 도착했다. 기가 막힌 카페를 찾았다. 과연. 내가 너에게로 오려고 아침부터 그 고생을 했던 거구나. 행장을 풀고 노트북을 꺼냈다. 음료는 역시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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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 시간을 걸어올라가 4시 반 배 시간에 간신히 댈 수 있었다. 품 안엔 빵을 다섯 개나 끌어안고서.
혹시 하는 마음에 빵집에 다시 갔더니 문이 열려 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 나의 전리품. 완도의 모든 것.
오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낙엽 소세지 빵을 먹었다. 루간스키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23번을 틀고서.
대단히 성취가 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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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7일 차
숙소 55,000
전복비빔밥 15,000
빵 14,500
라떼 5,000
자몽에이드 5,500
뱃삯 1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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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6일 차
다리 들어 올리기 108번
스쿼트 120번
걷기 30,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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