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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해남 11일 차.

이혼녀들의 성지와 젠틀한 깡패

by NOPA


20250515 해남 11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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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숙소 카페에 앉아 있는데, 부부가 내려왔다. 아내가 카페를 둘러보다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국물 하나 갖다 줄까?

응.


부엌 시설도 없는 모텔에서 어떻게 이 아침에 국물을 공수했지? 대단하다 한국인!


아내가 남편에게 가져다 준 국물은 커피였다. 커피를 국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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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식물 쓰레기예요?

아껴둔 초코 찹쌀떡을 먹으라고 드리니까 키르키즈스탄에서 온 지현씨가 웬 진상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해달라는 줄 알았나 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왜 드려요! 찹쌀떡이에요, 드세요!


지현씨는 한국에 온 지 5년째고 처음엔 신랑이랑 왔고 지금은 이혼했다고 한다. 사장님도 벼락 맞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고 했다. 나도 어느 틈엔가 혼자가 되어 정신병자 같은 내 자신을 키우는 중이다.


아무래도 이 숙소는 이혼한 여자들을 끄는 곳인가 보다. 어쩐지 아늑하더라니. 숙소 주변에 초강력 음기로 결계가 쳐진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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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장님, 이어폰 없습니까?

이번 빌런은 카페에서 이어폰을 안 끼고 뉴스를 듣는 사람이었다. 카페 음악소리보다 더 크게 볼륨을 키우고 듣고 있었으나 워낙 사납게 생긴 남자인지라 아무도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 안의 12번째 자아는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다. 한 번 예민해지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말을 내뱉는다.


이어폰 없냐는 내 공격적인 질문에 남자는 험상궂은 얼굴로 시끄럽냐고 되물었고, 나는 “쫌” 이라고 했다.


갑자기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문밖으로 나갔다. 나가서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시발럼, 족 같은 놈 어쩌고저쩌고, 하며 마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깡팬가?

나 오늘 맞는 건가?

제길.


반도 끝까지 와서 맞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열정적인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더니 핸드폰 볼륨을 제거한 채 조용히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화가 오면 밖으로 나가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통화를 했다.


깡패는 깡팬데 젠틀한 깡패였다.

오늘도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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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의 바다.

위아래를 뒤집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하늘에도 물이 시커멓게 차 있었다.


이런 날엔 고기가 잘 잡히는지, 오늘 바다에는 어구가 잔뜩 있다.


집에서 몇 걸음만 나가도 이런 바다를 원 없이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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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늘의 돌.

애써 골라왔는데, 첫날 주워온 3개가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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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늘의 식사.


카페 붕어빵을 끊고 식사를 두 끼로 늘렸더니 배불러서 숨도 못 쉬겠다. 매일 먹기엔 조금 비싸긴 해도 해남 밥은 꽉 찬 밥이다.


사실 소인들은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군것질로 때워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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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부 11일 차

전복해초비빔밥 : 15,000

블루베리 요거트 : 5,800

전복죽 : 15,000

샌드위치 : 3,900


***

운동 11일 차

다리 들어 올리기 216번

스쿼트 100번(요즘 무릎이 시큰해서 스쿼트 못함)

걷기 10,5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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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86579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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