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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Jul 06. 2022

슬픔을 말하면 흩어져버릴까봐

호사다마를 껌처럼 곱씹는 중


...


참 바쁜 날이었다.

이 내용으로 출간을 할때서야 솔직히 다시 적어놓을 수나 있을까 싶은,

남편에게 아주 중요한 하루였기에 오전 7시에 24시간 밀키트 매장에 가서, 그리고 햇반을 돌려서 아침식사를 차렸다. 간단하게. 간장찜닭과 열탄불고기, 소고기무국, 진미채, 밥 정도로...


아이는 유치원에 워터슬라이드가 설치되어 준비물이 많았다. 수영복을 입혀서 등원시켜야했고, 준비물마다 이름을 써야했다. 발레하는 날이라 빵빵한 가방이었다.


등원까지 시키고 잠시 쇼파에서 한숨돌리는 동안 알람이 왔다. 10분전 알람이다. 대학병원 외래 결과 듣는 날.


오마이갓.


남편과 딸을 챙기느라 내가 일주일동안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던 날을 까마득히 잊은 것이다. 다행히 집과는 4분거리. 도착해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동안 내가 일주일동안 했던 생각들이 상기되더라. 그중에는 몹쓸 기도도 있긴했다. 남편의 이번일이 잘된다면 하느님 저는 유방암에 걸려도 될거같아요...뭐 이런 몹쓸기도. 어찌됐든 이름있는 외과의사가 암은 아닌 것 같다고했으니 그런 막말을, 아니 막생각을 했나보다.


역시나 나쁜 기도는 또 찰싹같이 달라붙는데,

그러지말았어야했는데.


육아종성유방염.


희귀병이란다.

아직 결핵균이 있는지없는지 조직검사가 안 끝나서 알아봐야하고 그게 끝나면 스테로이드를 6개월간 강하게 써야한단다. 말문이 턱 막혔다. 제 임신은요? 애 낳고나서 치료하면 안되나요?


의사는 단호했다. 왼쪽 오른쪽 혹이 많고 지금 큰것은 상태가 안좋고...등등. 어찌됐든 임신이 지금 중요하냐는 말이였다.



유산 뒤 둘째 아이를 어서 갖고싶었던 내 마음은 그저 무참하게 어긋난다. 남편의 큰 일이 끝나기 전까진 입도 벙긋 못한다. 친정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할 말이 없다.


그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병원 대기실에서 다음 안내를 기다리며 엉엉 울어버렸다. 삶은 원하는대로 좀처럼 흘러가지 않는구나. 나의 2022년은 진심으로 슬픔으로 점철되려 하는구나.


호사다마.

좋은 일에는 시샘하듯 나쁜 일이 따른다는 말.


그저 행여나 말하면 이 기운이 흩어져버릴까봐, 다시 주섬주섬 줍기도 어려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이주간 침묵해본다. 입이 간지럽지만 지금은 내 일보다 남편일이 먼저이니까...


슬픔은 늘 외면하면 삭아있는 법.


오늘 한잔 술과 참치로 잠시 외면해본다. 내일은 식단해야지, 정신차려야지 그저 되뇌이면서.


나의 내일을 나는 모르겠다. 그저 어렵다.

하루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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