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존재조차 몰랐을 이들과
배 안고파?
I'm starving.(아사 직전이야.)
지구의 반을 돌아 스물여섯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겁에 질려 바닥에 웅크리고 있을 그 때,
고향친구마냥 마중을 나와 준 나의 첫 카우치 호스트 아단Adan이 나타났다.
모든 것이 처음인 어색한 여행자 주제에,
우리의 첫 대화는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걱정했다.
애초에 과달라하라가 어딘지도 모른 채 멕시코에서 비행기 삯이 제일 싼 도시라 무작정 선택한 곳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되지, 돈은 어디서 인출하지, 나를 기다리는 그는 괜찮은 사람일까. 아니, 안전한 사람일까. 걱정 투성이인 채로 대책 없이 멕시코에 뚝 떨어졌다.
카우치서핑이란, 여행지에 거주하는 현지인의 카우치couch(거주 공간)를 무료로 빌리고,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함께 생활하는 여행 방식이다. www.couchsurfing.com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카우치서핑을 구했다.
서핑 끝에 인상 좋고 여행을 좋아하는 아단Adan에게 메세지를 보내 의사를 밝히고, 그의 카우치에 4일 동안 머무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한 달 간 꾸준히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멕시코엔 왜 오는지, 가고 싶거나 경험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봐 준 아단은,
도착하는 날이 마침 주말이니 공항으로 픽업을 나와준다고까지 약속해주었다.
하지만 그 약속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장소라든지 시간이라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비행기에 올랐고,
시애틀에 도착해서야 불안해진 나는 어렵게 연결한 와이파이로 멕시코행 비행기 편명만 알려주고 말았다.
지나고 나서야 말이지만, 아단이 없었다면 여행 첫날부터 한국을 떠나온 것을 후회할 만큼 겁에 질렸을 게 뻔하다.
서로를 알게된 지 고작 한 달 남짓이지만
그를 보자마자 긴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작은 공항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고픈 배를 움켜쥐었고, 툴툴거리는 아단의 차는 곧장 동네 케사디야 가게로 방향을 잡았다.
멕시코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도움으로 472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이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날 것'이라는 복선이 짙게 깔리는, 찬란한 새벽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