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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14. 2024

조용하게 매혹적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새로운 세계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3) 리뷰

산골 마을에 도시에서 온 불청객이 특정한 방식으로 자연을 자원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얼핏 ('도시와 자연' 내지는 '지역주민과 이방인' 혹은 개발에 동조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 등) 분명하게 도식적인 구도를 통해 사회적인 소재와 화두를 보여주려는 듯 싶었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3)는 그러나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서서히 짐작하게 만든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


사람들 간의 (설명회 장면에서조차) 주고받는 대화를 연출하고 보여주는 방식이나 차 안에서 인물과 인물 곁을 오가는 카메라 이동은 이것이 여전히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가 맞다는 걸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전 몇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서사적인 측면에서 반복과 차이를 통해 울림을 주었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단순히 선악이나 인간과 자연의 정도를 넘어서 거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래서 그 장면에서 하나가 응시하고 있었던 건 사슴이었을까 혹은 하나가 곧 사슴이었을까? 타쿠미는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외부인인 사람과 외부인이 아닌 사람은 각각 누구일까, 혹은 (설명회에서 어떤 인물이 말하듯) 그걸 나누는 것 자체가 그리 의미 있는 일일까.


시점 쇼트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장면들을 볼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게 누구의 것인지를 찾으려 하게 된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오프닝이나 클로징에서 그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거나 혹은 인물이 아니라 (절대적인 측면에서) 영화 자체의 시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이 영화는 주행하는 차량의 (누구의 시점도 아닌) 후방을 몇 번씩 보여주는가 하면 날고 있는 새를 분주하게 따라가기도 한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


요즘은 불편하지 않고 쉽게 이해되어야 마치 좋은 이야기인 것처럼 간주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생각할 거리를 가져다주는 쪽은 당혹감을 안기거나 의외성을 내포한 것들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후반, 특히 결말부는 꽤나 충격적인 쪽이지만 무심한 듯 숲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첫 장면을 떠올리면 이 짧은 영화가 그간의 감독 필모그래피와는 다른 차원으로 내딛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음악이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낯선 표정을 한 배우들이 스며들듯 캐릭터가 되는 동안 자연의 모습을 한 영화는 그 뒤편에서 미스터리의 얼굴로 다가와 상처를 내고 어둠을 드리운다. 조용하게 매혹적인 방식으로 (2024.04.14.)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포스터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열정>(2008)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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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우연과 상상>(2021) 리뷰

https://brunch.co.kr/@cosmos-j/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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