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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5. 2024

평론가는 아니지만 비평적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가치 있는 기록을 만들려면

주로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스토리(Story)’나 ‘내러티브(Narrative)’ 같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를 예로 들면 대략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연한 아이디어로 뉴욕 증권가를 호령하던 전설적인 한 인물이 약물 문제 등 여러 이유로 겪는 흥망성쇠를 다룬 이야기’라고 소개한다면 그건 스토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관객으로 하여금 해당 인물에게 이입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소하듯 관찰하게 하다가 결국에는 그에게 현혹당했던 영화 속 수많은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만들어버리는 서늘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내러티브의 영역이다. 한편 이 이야기가 사건이 벌어진 시간 순서대로 펼쳐지는지 혹은 몇 년 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지를 논한다면 그건 ‘플롯(Plot)’에 대한 것이다.


요지는 기록한다는 건 자세해질수록, 그 인과 관계나 맥락을 충분히 잘 들여다볼수록, 그리고 축약하지 않을수록 고유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나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 대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 '개' 쩔고 마고 로비 예쁜 영화” 정도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의 영역에 이르는 이런 종류의 기록이라면 그걸 고유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스토리는 아무나 만들 수 있지만 내러티브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에 대해 충실히 들여다보고 기록할 때 가능해진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무수히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내 안에 생겨난다.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그것들은 이미 무의식과 감각의 형태로서 내 경험으로 형성된다. 내 안에 이미 어떤 추상의 형태로 그것들이 자리해 있다는 뜻이다. 매 순간 한 번에 한 가지씩의 감각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많은 것들은 더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재미있었다’라든가 ‘여운이 남는다’ 같은 축약된 느낌으로만 남기 쉽다.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는 직업을 가진 이가 아닌 이상 이런 일은 자연스럽고 세상에는 즐길 것들이 너무나도 넘쳐난다.


당장 내 이야길 하더라도 넷플릭스에는 보고 싶다고 ‘찜’ 해둔 영화와 TV 시리즈가 수십 편이 넘고,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도 일종의 즐겨찾기처럼 몇 백 권의 책들이 담겨 있다. 대체 그것들을 언제 다 보고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지?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것들을 다 소화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씩 천천히, 내게는 끊임없이 이야기들이 생겨날 것이다. 내 이야기가 끊임없을 수 있는 건 다만 매일 기록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글을 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드는 문장에 표시를 하고 다 읽고 나면 그것들을 정리한다. 이런 작업들을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경험과 감각을 좀 더 내 삶에 의미가 있는 쪽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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