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당신의 글도 제법 오독될 것이다
잘 읽은 사람은 굳이 나서지 않는다
읽고 쓰는 일이 타인의 생각과 관점을 잘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고 말하니 마치 글 쓰는 젊은 꼰대가 된 것 같다. 각종 노이즈와 도파민이 범람하는 환경에서 어떤 여유와 너그러움 같은 것을 갖기란 쉬운 일이 물론 아니다. 글 쓰는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쓰는 일을 계속하는 것밖에.
생각해 보면 어떤 이야기 - 그것이 글이든 영상이든 무엇이든 간에 - 를 쓰고 만든 사람이 의도하고 기획한 그대로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다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획일적일 수 없다는 건 문화예술의 본질과도 연관되며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와 방식으로 존재하는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 취향 등을 상기하면 누군가에 의해 오해되거나 오독되는 것도 어쩌면 감수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종종 강조하는 대목은 불특정 다수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가능하지 않으니까. 물론 글을 그러니 대충 써도 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보다는 차라리 특정 소수를 염두하는 게 더 괜찮을지도 모른다.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써서 올린다는 건 거기 누가 있을지 모르는 안갯속을 헤쳐나가면서 내 깃발을 꽂아두는 일이다. 누군가는 볼 것이고 누군가는 보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댓글 같은 곳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잘 보고 있어요'나 '잘 읽었습니다' 같은 말이 다소 무성의하다고 생각했다. 뭘 어떻게 보았고 무슨 생각을 하거나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가 담겨 있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기계적인 리액션이라고 여겼던 것.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보았고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알 길이 없으니까. 오프라인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잘 읽고 있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네왔을 때의 그 낯설고 쑥스러운 기분을 아직 기억한다. 그에게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사였을지라도 내게는 그게 선뜻 와닿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를 넘어서는 의미로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꾸미고 포장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예의상으로 하는 말 같은 것에는 그리 능숙하지 않아서 그와 같이 느꼈을 수 있다. 꼭 '좋아요'를 남기고 '댓글'을 남겨야만 그가 글을 읽었음을 지시하는 건 아니겠다.
언젠가 썼듯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이라는 매체 혹은 수단의 태생적인 한계를 직시하는 일이고, 이 공개적 표현이 항상 상호적인 대화나 교류의 형태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며, 남을 의식하기보다 결국은 스스로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려 글을 쓰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그럼에도 미지의 누군가는 내 글을 우연히 만난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뭐 이런 글이 다 있나 하고 지나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가만히 끄덕이며 내 글에 오래 머물다가 갈 것이다.
그래서, 그러니까, 아마 당신의 글도 제법 오독될 것이다. 그렇지만 잘 읽어주는 사람도 분명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