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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4. 2024

가십이 아니라 이야기에 관심 가지려 합니다

삶은 요약될 수 없으니

타인의 이야기를 접하기란 점점 더 쉽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끊이지 않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게 뭐가 어려운가 싶지만 여기서 말하는 정보란 주로 가십이나 통계 같은 걸 뜻한다. 오늘은 누가 결혼을 했고 어제는 누가 이별을 했으며 내일은 누가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등의 소식들이 마치 그것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이었던 것처럼 갖가지 뉴스와 채팅방과 커뮤니티에서 흘러나온다. '받'이라는 한 글자를 달고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무성한 말들이 번져나가고 그것들의 소음 속에 어쩌면 정말로 알려져야 할지도 모를 소식은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그 자체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명한 사람일수록 원치 않는 관심을 사소한 것에서 받게 될 수도 있고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보는 눈도 많아져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목격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집 근처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일상을 사람들이 과연 알 게 뭐람. 특정한 가치판단을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현상 자체는 어쩌면 비가 오고 비가 그치고 길가에 핀 능소화 잎이 떨어지듯 자연한 사실의 영역일지 모른다.


유명한 타인에 대한 정보에 있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커뮤니티 등에서 접한 특정인에 대한 일부의 내용을 얼마만큼이나 그 사람의 삶 전반에 있어 연관 짓느냐 하는 점과,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만큼의 생각이나 확인을 거친 뒤에야 판단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나오는 듯하다. 좀 더 축약해서 쓴다면 이면의 복잡성과 개인의 당사자성 정도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미디어 등에서 접하는 유명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고, 또 너무 쉽게 그 정보 들을 토대로 그의 삶 전체에 대해 판단하려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영화배우든 가수든 아니면 유명한 작가나 평론가든 모델이든 유튜브 크리에이터든 간에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인성'에 대해 들은 정보를 가지고 쉽게 논하고 개인사에 대해 마치 직계가족인 것처럼 판단을 쏟아내며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누군가의 해명을 그것이 마땅한 것처럼 요구한다.



평소에 제법 많은 것들에 대해 읽고 쓰는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고는 한다. 문자 언어로 된 매체를 읽는 일은 영상이나 음성 언어로 된 것을 보거나 듣는 일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독자가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은 한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자 언어가 아닌 것들은 대체로 즉각적으로 한눈에 다가오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조절하기 어렵다. 지금 나는 얼마간의 비약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읽거나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훈련이 된 사람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에 길들여진 사람보다 이면을 조금 더 잘 헤아릴 수 있거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만큼 예민해지고,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만큼 상대적으로 더 둔감해진다는 일종의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활자를 읽고 글을 쓰는 행위나 문화예술적, 지적 감수성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치 대규모로 개봉되는 상업 영화보다 소규모로 개봉되는 독립, 예술 영화가 일반적으로 박스오피스 순위가 더 높을 수는 없는 것처럼. 어느 정도는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악플을 작성하는 이유가 단지 책을 안 읽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시간을 들여 한 번 더 숙고해 보는 태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거나 길러질 수 있다면 보이는 것 이면의 복잡성이 조금은 더 헤아려지고 보이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개인의 당사자성이 조금은 더 존중받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소비적으로 대상화되는 유명인에 대해서라면 말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명인 이야기에 있어 그러하다면 이웃과 주변인에 대해서도 우리는 각각의 타인들이 가진 삶의 다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원래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 그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다 신경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일들만큼이나 '왜 그럴까' 혹은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할 일들도 적지 않다. '쉽고 편하게'만 찾다 보면 우리는 조금 복잡하고 조금 시간이 필요한 것은 헤아리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몇 년 전 좋아하는 소설가로부터 '삶의 가십이나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에 지위를 부여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뒤 그 말은 줄곧 하나의 훈령처럼 자리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아니든 필요한 일이라고 믿게 된 것.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화두이지만 그 말을 듣고서 더 또렷해진 일이다. 요약될 수 없는 삶의 고유한 진실을 전달해 주는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귀하다.



"끊임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현대에 비평 또는 비평하는 태도를 사회에 퍼뜨린다면 조금이나마 침착함과 차분함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는 언어와 언어가 오르내리는 가운데 한숨 돌릴 수 있는 작은 층계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가와사키 쇼헤이, 『리뷰 쓰는 법』에서(박숙경 옮김, 유유, 2018,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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