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하>(2012), 노아 바움백
영화의 시작부터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남자 친구와 사소한 이야기를 하다 헤어지게 되고, 동거 중이었던 베프 '소피'(믹키 섬너)는 때마침 '프란시스'에게 독립을 선언한다. 수습 단원으로 소속돼 있는 무용단에서의 '프란시스'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 집, 혹은 '프란시스'가 머무는 곳들이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자 의미가 되는 영화 <프란시스 하>(2012)는 그녀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로드무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종 긍정적으로 쾌활하며 엉뚱하게까지 보이는 '프란시스'의 행동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막연한 미래와 불투명한 나날에 대한 스스로의 불안감을 애써 감추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흑백의 뉴욕에서 그녀의 일상만은 조금 더, 컬러풀해질 수 있길 응원하게 된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프란시스
'프란시스'는 27세다. 20대 후반이라면, 그쯤이면 자신의 커리어 패스를 정하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되겠지만, 과연 자신이 정확히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을 찾아서, 바로 그 일을 즐겁게 영위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꿈꾸고 싶은 이상과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적당히, 혹은 적당하다고 간주할 만한 타협점을 찾아서 적당한 일을 하며 적당히 사는 사람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각자의 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성공의 척도로 강요하는 사회에서 '프란시스'와 같은 '꿈꾸는 청춘'의 삶은 쉽지 않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해야 할 일이 생길 때. 가장 흔하고 개성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저는 어디에 사는 몇 살 누구이며 무슨 일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동시에 사회가 개인을 나약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씁쓸한 문구이기도 한 것이다. 다행히도 삶에 걸쳐서 계속 추구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고 나서, 나는 줄곧, 직업 자체가 생의 목표와 동일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왔다. 이를테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것 자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적 바탕을 토대로 나의 삶에서 과연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무엇을 추구하고자 하는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프란시스 하>는 젊은 청춘에게 애써 메시지를 전하거나 교훈을 준다기보다, 관객 각자의 '이름'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제목의 의미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나이나 직업, 학벌과 같은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여기 이 땅에 오늘도 발 붙이며 땀나게 달리고 있는 '나'라는 이름 그 자체. 어디에 있든,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든, 조금 굽히더라도 결코 변하거나 지워지지는 말아야 할 나의 이름. '프란시스 하'(Frances Ha)는 곧 제 이름 당당히 쓰기 어려워 자괴감에 빠지는, 스스로를 보통의 존재라 여기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을 다시 써보게 한다.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를 배경 삼아, 가장 '영화적인' 도시라 할 수 있는 뉴욕을 배경 삼아. 비록 짧은 주말이 지나가는 것이 두렵고 월요일이 월요일이라는 건 더욱 두려운 나날일지라도, 계좌이체 수수료나 카드값 고지서 같은 것에 가끔은 위축될지라도. 당신의 이름은 끝내 빛을 내고야 말 테니까. 그러리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프란시스 하> 해외 예고편: (링크)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