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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23. 2018

삶은 불안정함과 불완전함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인 디 에어>(2009)

다른 회사를 대신해, 그 회사의 직원을 해고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 '직업전환 카운슬링'이라고 명명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영화 <인 디 에어>(2009)의 주인공 '라이언'(조지 클루니)의 직업이 그것이다. 영화의 기반이 된 원작 소설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라이언'은 잘 짜인 6일간의 출장 중, 지금까지의 여느 일정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그 며칠의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들르고, 사람들을 만나며, 또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떠오른 생각과 기억들, 매 순간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상세하게, 그리고 냉소적으로 늘어놓는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여러 도시를 드나들지만, 결정적인 사건이나 심각한 갈등 혹은 위기는 찾아오지 않는다. 이 '해고 전문가'에 의해 해고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으며, 이 소설의 끝에서도 '라이언'은 여전히 같은 삶을 산다.


「우리는 바쁘게 살아간다. 그렇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나더러 많은 사람들을 얕게 아는 것과 소수의 사람에 대해 깊이 아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기꺼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나는 넓은 각도의 롱 숏이 더 좋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운명적인 상대는 아니었다. 따라서 중간 단계는 성큼 건너뛸 것이다. 우린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할 것이다.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점도 알게 되리라. 하지만 우리 사이엔 그게 다다. 나는 안도한다.」

「내 여행 일정표를 딱 반으로 접으면 양쪽 일정이 마치 거울에 비치듯이 똑같다. 나는 이런 여행을 계속해오고 있다. 마치 요요처럼, 갔던 길을 똑같이 되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행의 마지막 순간, 마치 회전축이 돌기 직전의 정지된 순간처럼, 잠재된 에너지가 가장 충만하게 되는 정적인 상태를 맞게 된다.」

소설 『업 인 디 에어』에서 부분 발췌 (월터 컨 지음, 김환 옮김, 예문, 2010)


이것은 드라마 라기보다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일종의 풍자이자 관찰기다. 2001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찾아온 세계 금융 위기를 거쳐 영화화되면서 많은 각색이 이루어진다. 사실상 주인공의 직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생략되거나 제외 혹은 가공되었고, 각색이라기보다 제2의 창작이라 칭해도 될 만큼 영화 <인 디 에어>와 소설 『업 인 디 에어』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둘 모두를 본다면, 아마도 당신은 높은 확률로 영화를 더 지지하게 될 것이다.


영화 <인 디 에어> 스틸컷


“이제 당신을 해고할 테니 실제로 직장을 잃었을 때처럼 반응해주세요.
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해도 되고요.”


단지 자본주의에 관한 관찰기였던 소설에 비해 영화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직장을 잃는 등 삶의 큰 굴곡을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했다. 실제로 직장을 잃은 일반인들을 섭외한 제작진은 그들에게 위와 같이 주문했다. 연기자가 아닌 그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극영화이면서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독특하게 결합된 이러한 만남은 현실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 도중에는 'Lonesome Town'이라는 곡이 삽입되어 있는데, <인 디 에어>의 DVD에 수록된 제작진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곡은 영화 음악을 담당한 제작진의 곡이 아니라, 영화에 써달라며 직장을 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자작곡을 보내온 것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얼마 후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며 제작진에게 소식을 전해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 <인 디 에어> 스틸컷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들을 상대하는 '라이언'과, 그리고 새로 입사한 '나탈리'(안나 켄드릭). '나탈리'는 출장에 드는 비용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컴퓨터를 통해 원격으로 해고를 행하는 시스템을 제안하고, '라이언'은 그녀가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스스로 청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사장이 한 수 가르쳐 보라며 '나탈리'를 동행시킨 것이지만) 자신의 출장을 '나탈리'와 함께하게 된다.


'라이언'은, "사람들을 해고시키는 게 못할 짓"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일에 있어서 최소한의 주관과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화상 해고 시스템의 도입을 반대한 건 단지 '나탈리'가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이 일의 어떤 선을 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탈리'의 제안으로 도입된 화상 해고 시스템은 그 과정과 양상 모두에 있어 여러모로 '라이언'의 일과 '라이언'이 자신 주변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며, 여정 중에 우연한 일로 만나게 되는 '알렉스'(베라 파미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혼자서 평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던 '라이언'의 일상을 흔든다.


영화 <인 디 에어> 스틸컷


그러나 '해고전문가'라는 원작의 소재는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창조적이고도 동시대적인 각색을 더한 <인 디 에어>는 '라이언'의 일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지는 않는다.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라면, 그 영화가 다루는 인물의 삶을 뒤흔들기보다 그저 앉은자리에서 스스로의 위치와 태도를 돌아보게끔 유도하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쌓아온 경험과 생각들이 확고한 삶의 길이라고 믿었던 남자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 <인 디 에어>는 구름 위에서 시작해 다시 구름 위에서, 여전히 불확실하고 정해지지 않은 인물의 머리 위에서 마무리된다. 내 삶이 옳고 당신의 삶이 그른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자의 짊어진 무게만큼, 모두가 비슷한 살아감의 고민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하며 질문과 대답을 거듭하고 있음을, 그 흔들림과 좌절이 경험해보지 못한 방향으로 삶을 다시 이끌어줄 것임을,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아마 깨달았을 것이다. 어제와는 아주 조금 다른, 그러나 결코 같지는 않은 어떤 내일에 관한 여정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시의 일부를 끝으로 덧붙인다.


애매하고 모호한 것이
속수이며 무책인 것이
안절과 부절 사이에서 헤맬 때
심사하고 숙고한 단 하나의 진정한 시는

다른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뜨는 것
내일의 불확실한 그것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것
이 말들은 던져진 운명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천양희 시 '시작법(詩作法)' 부분,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새벽에 생각하다] 중에서


영화 <인 디 에어> 국내 메인 포스터

*북티크 '무비톡클럽' 2018년 8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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