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마음이 나를 갉아먹는다
요 근래에도 계속 당근마켓 알바를 뒤적이고 있었다. 과거에 편집자로 일했던 적이 있어서, 편집 알바가 올라왔길래 신나서 신청했는데 테스트 편집을 요구해 왔다. 아무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7일 무료 체험으로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테스트 편집을 해줬다. 잘하는 것 같다고 같이 일을 하자고 했는데 당근 마켓에서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30분 이내의 거리로 올라왔던 게, 미팅을 하자더니 인천 끝자락으로 오라고 했다. 회사 이름으로 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올린 거여서 도무지 거기까지 가기는 무서워서 유선상으로 미팅을 할 수 없겠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사무실이 그쪽이어서 그럴 수 없으며 유선상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된 강의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줬는데 개인적으로... 그저 일을 하고 싶었던 건데 웬 강의? 웬 수입창출? 이런 느낌이 들었다. 남자친구와 얘기했더니 위험한 것 같다고 했다. 인천 끝자락까지 가기에는... 가는 시간까지 시급으로 쳐줄 것도 아니었고, 편집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인 데다 내가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데도 유선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11만 원의 페이를 제시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는데.. 쩝) 11만 원을 벌자고 거기까지 가기엔 좀 뭔가 안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이걸 자꾸 설명하려고 하니까 내가 좋은 기회를 그냥 겁먹어서 놓친 것 같은데 느낌이 쎄했다고 꼭 덧붙이고 싶다. '강의' 얘기가 나왔을 때 좀 더 불안한 느낌이 강해졌다.
두 번째로 연락을 했던 곳은 '쇼핑몰 사무 보조'라고 올라온 기업체의 공고글이었다. 기업의 이름을 걸고 올라온 거라 편집 알바와 같은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업체 이름을 지도에 검색해 보니 공고글에 올라와있는 주소와 일치했고 집에서 10분 거리라 부담 없이 갈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지원을 넣고 얼마 되지 않아 출근이 가능하냐고 연락이 왔고,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들은 번호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고, 출근 전에 전화를 해서 업무와 관련된 설명을 잠깐 해주겠다고 했다. 오? 역시 기업체라 다른가. 싶기도 해서 별생각 없이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8시 50분에 전화가 왔다. 일단 나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업인이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8시 50분에 전화를 한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됐다. 원래 외부 연락은 다들 출근한 이후에 하는 게 통상적이므로... 정말 일러야 9시 반 (심지어 나는 이때도 잘 전화하지 않는다. 10시는 넘어야 전화하는 편이다. 우리 업계 특성상 10시 출근도 많기도 하고?), 아니면 넉넉히 12시 넘어서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8시 50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돈이 급한 알바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냅다 받았다. 목도 덜 풀려서 잠긴 채로...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냥 자다가 받았다. 근데 통화 내용을 듣다 보니... 너무 말이 안 됐는데... 일단 내 '개인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매대행을 해주는 업체인데, 구매를 하는 사이트에 개인 별로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 정해져 있어서 내 개인정보가 필요하고 그 개인정보로 가상계좌를 만들 거라고 했다. 가상계좌로 환불권이나 리베이트권이 들어올 수 있는데 그런 건 자기네 회사 계좌로 보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단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 데에서 슬쩍 빨간불이 켜졌는데 '가상계좌'와 '리베이트권' 얘기가 나오면서 어..? 빨간불이 삐뽀삐뽀 울렸다. 일단은 개인정보가 필요한 일이라는 말도 공고문에 없었고, 공고문에는 그저 '사무보조'라고만 할 뿐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라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고 끊었다. 룸메에게 얘기했더니 불법적인 일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고,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 내 개인정보를 고작 시급 15,000원에 팔아넘겨 가상계좌를 만들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불안했다. 결국에는 그것도 다시 연락하여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게 곤란하다고 거절하고 끊었다.
세 번째는 당근 알바는 아니고, 현업과 관련된 일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 업계와 관련된 일들의 공고가 올라오는 사이트에서 내 직군에 해당하는 공고문이 올라온 걸 확인하고 이력서를 보냈다. 당근 알바와는 달리 이력서를 보낸다고 바로 연락 오는 건 아니어서 잊고 살았는데, 찾아보니 이력서를 보낸 지 꼭 열흘 만에 온 연락이었다. 영화였고, 나름대로 재밌을 것 같아서 지원을 했었다. 그런데 전화가 와서 근무형태를 들어보니 일단 월급 계약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월급 형태로 계약을 해왔기 때문에 일자별로 계산을 하는 게 좀 어려웠는데, 그들이 제시한 금액 자체도 터무니없었다. 거의 두 달을 저당 잡혀야 하는데 평균 내 월급의 1/3 정도의 금액을 제시했다. 현업을 하는 게 남에게 민폐 끼칠 일도 덜하고 나도 익숙하니 편하고 좋긴 한데, 그 금액으로는 생활이 좀 어려울 것 같았다. 당장에 내일부터 며칠인데 얼마입니다.라고 했으면 일을 했을 것 같은데 두 달을 그 금액으로는... 그러면 만약에 다른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떠나지도 못하는데 내 생활비는 누가 책임지지? 싶었다. 그래서 결국 그것도 거절했다. 그쪽에서는 차라리 페이를 역제안해주길 바랐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것도 좀 곤란했다. 그들의 제작비가 넉넉해 보이지도 않았고, 월급계약이 일단 불가능한 상태에서 촬영 일자를 제외하고 준비기간 동안 얼마나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나는 계산이 안 되지 않나? 역제안도 곤란하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곤란하고. 당장에 돈이 급한 건 난데, 내가 너무 재고 따지나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앞선 두 가지의 경험도 그렇고... 그래도 결국엔 거절했다. 여건이 너무 별로였다.
그렇게 총 세 가지의 돈벌이를 거절하고 보니 현타가 많이 왔다. 통장이 비어서 일을 구하고 싶은 건 난데... 그러면 뭐라도 거절하지 말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뭐든 간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받아오는 게 중요하지 않나? 계속 그런 생각이 들면서 며칠을 좀 우울하게 보냈다. 그런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너무 조급한가? 왜냐면... 항상 나는 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1-2달 정도 휴식시간을 갖곤 했는데, 프로젝트 하나당 너무 기운을 많이 쓰기도 하고 현장직이다 보니 몸을 자꾸 쓰니까 체력이나 근력을 보충해야 할 필요도 있고 또 일을 연달아도 해봤는데 ㅋㅋ 너무 만신창이가 되어서 피하게 되었다. 지금은 저번 프로젝트를 끝내고 이제 딱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이렇게까지 조급하게 일을 구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통장이 좀 텅텅인 느낌이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굶어 죽을 정도도 아니고, 남자친구가 당분간 놀 때 쓸 돈은 걱정 말라고까지 얘기해 줬고, 주변에서도 쉬는 동안 충전하고 시나리오 좀 빨리 써달라고 독촉을 해오는데 (그냥 읽고 싶어 해 준다. 감사한 사람들...)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자꾸 일을 구하려고 했을까? 그렇게 돌이켜보니... 재테크 때문이었다 ^^ 시드머니를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시드머니를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나쁜 마음은 아니다. 빨리 만들어야 빨리 재테크를 시작하고, 그래야 빨리 복리의 마법을 느낄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빨리 시드머니를 만들어서 재테크를 시작하는 게 이득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게 날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지? 시드머니를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나를 우울까지 이끈다면 그게 의미가 있는 재테크일까? 행복해지고 싶어서 재테크를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너무 주객전도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좀 더 차가운 마음으로 더 고민해 봤다. 내가 지금이야 이렇게 조급하게 굴지만, 막상 제대로 된 일을 찾아 들어가면 달마다 돈을 꽤 버는데... 이런 조급한 마음으로 그런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갖는 편이 맞지 않나? 싶었다. 어쨌든 시드머니를 마련하려면 '목돈'이 생기는 게 좋은데, 나는 한 번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하고 나면 금방 금방 목돈이 쌓이는 직군이다. 프로젝트하는 동안 돈 쓸 일이나 시간도 별로 없고 받는 페이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을 하면서 제대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그동안 연습해 온 절약 습관들을 발휘하는 쪽이 시드머니를 만드는 데도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내 현업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행복한 데다 돈까지 잘 버는데 내가 왜 사기일지도 모르는 일들에 전전긍긍을 해야 하냔 말이다. 경기가 안 좋고 일자리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조급하고 불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안 구하는 건 아니다. 매번 뭔가 현업과 관련된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부지런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는 공고문이 올라온 지 2분 만에 보낸 적도 있다. 요 며칠 새 여러 군데에 넣었으니 다음 주쯤에는 연락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보험으로 마켓컬리에 지원해 두었다. 친구와 동반으로 지원했는데 한번 가보고 괜찮으면 종종 가보려고 한다. 셔틀버스도 집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 친구도 현재 (돈이 급하진 않지만) 놀고 있어서 같이 여러 번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마켓컬리는 큰 기업이고 갑자기 내 근무지를 바꾼다거나 내 개인정보로 가상계좌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일이 좀 힘들어도 내 페이를 후려치기보단 최저 시급으로는 계산을 해줄 테니까. 아마 다음 주쯤엔 마켓컬리 알바 후기를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당근 마켓 알바도 너무 괜찮았지만, 어쩌면 조금 위험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정식공고가 아니다 보니 말이다. 그런 걸 잘 걸러내고 좋은 일을 찾아가는 것도 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일이겠지?
그리고 여전히 블로그도 열심히 하고 있다. 블로그 글을 쓰다 보니 은근히 재미가 붙어서 열심히 쓰게 된다. 맛집이나 카페 리뷰보다는 여전히 영화나 책 리뷰 같은 것들이 재밌게 느껴져서 이걸 재테크 수단으로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싶긴 하면서도... 영화나 책 리뷰를 쓰고 있자면 뭔가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백수로서 뭔가 글을 하나 쓸 때마다 보람차기도 하고 ㅎㅎ 좀 우울감이 덜해지는 기분이 있다.
고작 일 마무리한 지 한 달 만에 이렇게 우울감을 느끼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통장 잔고가 큰 몫을 하겠지만서도 재테크를 하겠다고 너무 조급하게 마음을 먹은 내 탓도 큰 것 같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나의 이런 쉬어가는 시간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라 그들에게서 큰 힘을 얻고 있다. 나의 이러한 결심에 대문자 T 남자친구는 '그게 너무 맞는 거 같아. 너무 현명한 선택이라 토 달게 없어.'라고 말해주었다. 같은 대문자 T 인간으로서 그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천천히 가야지. 재테크 공부 시작한 지 뭐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버렸을까 나 스스로가 좀 웃기게 느껴졌다. 괜히 더 현타 느끼지 말고, 괜히 더 우울 느끼지 말고 천천히 계속 앞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청년실업률이 굉장히 높다고 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에 이런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적어보았다. 누군가 나처럼 일이 없어 우울을 느끼고 있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취업시장은 주차장이라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가. 누군가 차를 빼면 내가 들어갈 자리가 나기 마련이다. 요즘은 주차장 공사도 하고 주차장 들어가는 길목에 웨이팅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아직 숨 쉴 수 있다면 우울해하지 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단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보시길 추천한다. 우울은 수용성이니까.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스킨로션 잘 챙겨 바르고, 매 끼니 밥 잘 챙겨 먹고, 머리가 복잡해 잠이 오지 않을 땐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타서 침대 맡에 앉아보라. 일기를 쓰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그런 시간을 좀 보내보라. 그러다 보면 나처럼, 내가 왜 우울해야 되는데!!! 하고 털고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몸 건강히 살다 보면 분명 누군가 주차장에서 차를 뺄 테니 당신도 나도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통장이 너무 급하다면 일주일만 기다려주시라. 얼른 마켓컬리 일용직 알바 후기를 가져올 테니! 포기하지 말고... 행복을 위해 건강하게 잘 버텨봅시다. 재테크도 살아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행복을 위한 재테크 때문에 행복을 잃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chill 한 마음으로 파이팅!
지금 아무리 춥고 눈이 오고 난리를 쳐도 3월 말에는 꽃이 피는 봄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