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들 강녕하신가요

브런치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강녕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씁니다.

by 이지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 문장 외에는 요즘의 대한민국을 표현할 말이 없다. 실제로 길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수도에는 싱크홀이 발생해 사람이 죽었고, 그게 인재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전 국토의 70%가 산인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곳곳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화마가 온 숲을 헤집고 다니며 사람이며 집이며 며칠 째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는데 제대로 된 대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농부들은 트랙터를 끌고 서울까지 올라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가있어도 모자랄 공권력은 그들을 탄압하는데 힘을 쏟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가뜩이나 불경기로 지갑이 넉넉지 못한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피해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전한다. 그렇게 없는 지갑까지 털어 마음을 전하고도 너무나 황망한 피해 규모에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분노를 하다 하다 지쳐버린 사람들이 이제는 무력감에, 슬픔에, 그리고 또 다시 분노에 탈진할 지경이다.


나 또한 그렇다. 현재 백수가 된 지 한 달째, 있는 돈을 쪼개고 쪼개서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덜컥 큰돈을 모금으로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일자리는 끝없이 줄어들고 내 돈벌이는 점점 더 힘겨워지는데도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력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TV만 틀어도 온 뉴스에 피해 소식이 보이고, 포털 사이트나 SNS에 접속만 해도 아비규환이다. 차라리 자원봉사 같은, 돈보다는 몸과 시간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구직 활동도 계속해야 하고 거리도 멀고... 적고 보니 그냥 다 핑계 같아서 자원봉사를 좀 더 알아볼까 싶다만 사실 실제로 갈 확률이 낮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또 무력감만 늘어간다.


사람들은 지금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어떤 플랫폼에서도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이 시기를,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재테크를 하겠다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어서 정말 유감이다. 이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어떻게든 되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니까 재테크 같은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었지... 근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살아남아서 이 난관을 통과해야 재테크를 하든 뭘 하든 할 텐데, 지금은 그냥 모두와 함께 추락하고 있는 기분밖에 안 든다. 환율은 끝없이 치솟고 나라 꼴도 엉망인데 국제 정세도 안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뉴스를 볼 때마다 추락한다. 쿵 쿵 쿵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모두가 같이 추락하니 마음이 더 쓰리다. 언젠가 우리도 예전에 EBS 다큐프라임에서 봤던 것처럼 화폐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지폐가 아닌 메모지가 돼버리는 건 아닐지, 아니 그전에 내 통장 잔고가 0원이 되어버려 지폐를 만져보지도 못하는 건 아닐지, 그러다 이도저도 안 돼서 본가로 낙향하여 부모님 앞에 부끄러운 말을 해야 하는 건 아닐지... MBTI가 N인 인간의 상상력은 어찌나 끝이 없는지 다 추락한 것 같은데도 머릿속에서는 더 깊은 곳까지 추락하는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 동네에 아주 귀여운 옷수선 집이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이름이 귀여워서 들어갔다가, 사장님이 더 귀여운 분이라 단골이 되었다. (자주 가진 않아도 모든 수선을 그 집에서 하니까 단골이라고 해도 괜찮겠지?) 얼마 전 룸메가 패딩 지퍼 수선을 맡겼는데, 찾으러 갈 시간이 없다고 해서 대신 갔다.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사장님의 얼굴에 수심이 짙었다. 요 옆 가게는 몇 년째 월세를 얼마를 내고 있었고, 자기는 몇 십 년째 있어서 좀 더 싸게 내고 있었는데 건물주가 월세를 올렸다고 했다. 수선집해서 얼마나 번다고. 요 옆 가게는 옷 가게잖아. 거기도 이번 달까지만 있고 이제 나간대. 나도 나가야 되나 싶은데, 여기 있은 세월이 있어서. 얘기를 하는 도중에 사장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당근!' 사장님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내가 요즘 식물을 팔거든. 또 하나 팔렸네. 열심히 키워서 팔고 있어. 이런 거라도 해야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경기라는 단어가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내 현업이야 불경기인지 오래됐지만... 이런 조그마한 동네의 동네 상권에도 불경기가 들이닥치는구나, 싶었다. 이 동네의 온 사람들이 다 수선을 맡기러 여기로 올 게 뻔한데도 말이다.


많은 가게들이 폐업을 하고, 내 친구들은 좋아하던 가게의 폐업 소식에 울상을 짓는다. 술집이 바글바글한 거리는 점차 조용해지고 나 또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간다. 앓는 소리가 전국에서 울린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던 때가 그리울 정도다. 코로나가 지나갔는데 왜 다 괜찮아지지 않냔 말이야. 어딘지 억울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든다. 왜 자꾸만 더 나빠질까. 이런 때마다 왜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광장으로 나오는 걸까. 그런 사람들이 내내 시대를 이겨왔는데도 왜 자꾸만 더 나빠질까.


나는 솔직히 영웅이 나올까 봐 두렵다. (아니, 이미 나왔나?)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들 하지 않는가. 지금이 난세이니 영웅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찔하다. 영웅이란 건 너무 힘든 거니까.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고달픈 거니까... 금의 환양을 할 때나 영웅이 영웅인 것이지, 그전까지 그 사람은 화마 속에 뛰어드는 것 같은 고달픈 길을 혼자 걸어야 한다. 게다가 금의 환양이 살아있을 때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죽고 나서야 역사 속에 영웅으로 표기된 사람들을 많이도 알고 있지 않나. 몇 년 전부터 나는 영웅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살았다. 내가 영웅이 될 생각도 없지만 타인이 영웅이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난세가 아녔으면 좋겠다고, 이 모든 일이 영웅이 나오기 전에 자연스럽게 끝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제 정말 영웅이 나올 것 같아서 두렵다. 또 어떤 사람이 훌륭하게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모든 걸 짊어지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그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단 한순간도 그런 세상이 되어주질 않는다.


재테크 브런치북에 이런 글을 쓰게 되어 다시 한번, 정말 유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재테크를 해나갈 생각이 들질 않는다. 글쎄, 수익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면 그것도 맞다. 들어오는 돈이 있어야 돈을 불려 나가지. 0에서 곱하기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런 걸 차치하고서도, 내 개인적인 삶의 퀄리티 같은 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여기는 사회다. 사회가 망하면 개인의 삶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역사다. 내 삶이 없어지는 기분을 받는다. 사회가 망하고 있다. 그나마 따뜻한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이 망해가는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내 삶을 바라보겠는가. 그저 나도 같이 사회를 떠받칠 수 있기를, 이 무너져내리는 세상을 지탱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사람들은 결국 남태령에서 또 한 번 승리를 거두고,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피해지역에 모금을 보내고, SNS에서는 서로를 다독인다. 자꾸만 어딘가에서 튀어나오는 따뜻한 사람들이 나를 아직 숨 쉬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다들 다정할까. 그들이 자꾸만 내 마음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어쩌면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쩌면 이 사람들의 곁에서라면 그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든다. 어떻게든 될 것 같진 않은데, 그럼에도 이 사람들과 함께면 버텨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 과거에 갖고 있던 희망만큼 타오르진 않아도 마음 저 아래에 뭉근하게 맴돈다. 희망이 없는 이 시대에 위안이 되는 사람들의 행보가 어딘가 조각조각 숨어있는 희망을 자꾸 찾게 만든다. 나의 이 무력감과 생활고는 결국 내가 해결해 내야 하고, 그럼에도 나는 이 황망한 시대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내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일말의 보탬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래서 글을 썼다. 누구라도 좋으니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을 읽고 위안을 얻었으면 해서. 이런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당신뿐만이 아니란 걸, 이런 상황에서 내 통장잔고 따위나 바라보며 좌절하는 게 꼭 그렇게 죄짓는 것만은 아니란 걸, 그럼에도 시대를 향해 귀를 열고 마음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단 한 명이라도 알 수 있다면 나는 너무나도 기쁠 것이기에.


그러니까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다. 될 수 있으면 무탈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몸과 마음을 잘 챙기고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도 또 당신을 향해 따뜻한 마음들이 꼭 뛰어갈 테니까, 늦더라도 결국엔 도착할 테니까 조금만 버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발 부탁이니까 모두 강녕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누구도 스스로 저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티고 버텨서 새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목련처럼, 목련이 지고 나면 만개할 벚꽃처럼, 우리에게도 분명 꽃필 날이 와줄 테니까. 언젠가 다 지나갈 테니까. 포기하지 말고,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keyword
이전 13화조금만 여유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