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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를 당해도 삶은 이어진다

어찌저찌 멀쩡한 척 살아보는 거예요

by 이지

저번 주에 급히 짧은 글로 근황을 전했었는데, 이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어 글을 쓴다. 바쁘게 흘러가는 프로젝트에 지인의 소개랄까, 납치랄까... 어쨌든 참여하게 되어 눈 뜨면 출근해서 일 하고, 늦은 시간 퇴근하여 쓰러져 자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영상업계 인간이다보니 실제 촬영장에 나가게 되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정신이 없기에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9일 금요일 새벽, 하루를 넘겨 퇴근을 하던 중이었다. 운 좋게 다음 날이 쉬는 날이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술이라도 먹고 들어가자며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랬을까 운전을 하던 동료가 사고를 냈다. 새벽이라 도로에는 차가 없었고 우리는 꽤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었는데, 뒤늦게 좌회전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동료가 이미 반쯤 직진을 했을 때 핸들을 꺾어버린 것이다. 그 순간부터 슬로우라도 걸린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속도가 빠른데 이게 되나?' 하고 순간 생각했는데 뒷좌석에서 보이는 앞 유리창 너머로 신호등과 보도블럭이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어, 이거 안 된다.'라고 생각한 순간 앞 좌석 시트를 잡으며 몸이 충돌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급정거를 했다. 오른쪽 앞 바퀴가 보도블럭을 들이 받으면서 터져버렸고, 오른쪽 사이드의 에어백이 터졌다. 탄내와 연기가 자욱한 차 안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눈 앞에 있던 보도블럭은 이미 저 뒤에 위치하고 있었고, 자동차는 알아서 응급 센터에 연결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삐용삐용 소리가 나 돌아보니 내 손목의 애플워치가 충돌을 감지했다며 응급실에 연락할지를 묻고 있었다. 우선 애플 워치에게 괜찮다고 답하고, 운전자는 응급 센터와 연락을 취했다. 우습게도 계속 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어서 그랬는지 뭔지, 원래 근데 나는 늘 아프면 웃는 사람이긴 했어서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과 가끔 병원 의사 선생님들도 '왜 웃어요?' 묻곤 하는데 나도 답은 모른다.) 이상하진 않았다. 퇴근길 세트에서 정말 머지 않은 곳에서 난 사고였기에 우선 내려서 담당 PD에게 연락을 취했다.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에 내 첫 마디는 '미안한데 오늘 술은 못 먹을 것 같아.' 였다.

사고가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을 준비 중이던 PD와 그 팀들이 금방 달려왔다. 곧 경찰들도 왔다. 음주 측정을 했는데 차에 탄 모두가 측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명씩 불 때마다 경찰 선생님이 '예, 술 안 드셨네요~' 라고 하시는 게 웃겨서 또 웃었다. 이미 그때부터 몸을 지탱했던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당장 휴일 뒤의 촬영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을 받았다. 보조석에 탔던 지인은 명치 부근이 아프다고 했다. (이후 병원 진료로 골절임이 밝혀졌다...)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PD에게 다음 촬영부터는 내 대타가 필요할 것 같다고 미리 언지를 했다. 병원에 가보고 다시 얘기하긴 할테지만, 아무래도 못 나올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빨리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후에 운전자와 몇 명의 동료들이 견인차를 기다리며 남겠다고 했고 나와 지인은 PD의 차를 얻어타고 귀가했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에어백 터진 건 처음 봤는데 셋이서 셀카라도 찍을 걸 그랬다며 깔깔 웃었는데, 운전하던 PD가 그만 웃으라며 자기는 눈물이 난다고 왜 다치냐고 소리를 질렀던 게 기억이 난다. 야, 우리 어차피 내일 부터는 아파서 웃지도 못할텐데 지금이라도 좀 웃게 냅둬! 하고 더 크게 웃었다. 너무 철이 없나 싶긴 했는데 뭐 어쩌겠는가 운다고 사고 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뒷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하는 일이 없었던 것 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들 대학을 함께 다녔던 동문들이라 희한하게 사고가 났음에도 청춘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귀가했다.

집에와서 한숨 늘어지게 자고 눈을 뜨자마자 정형외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행히도 부서진 곳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 깁스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오른쪽 손목과 골반이 부어있다고 했다. 교통사고다 보니 악화가 될 수 있으니 경과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모님 성화에 한방병원으로도 향했다. 교통사고는 침을 맞아야 직방이라나.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찍었는데 부러진 곳은 없다고 하고요, 그런데 손목이 아파요. 저린 느낌이 있고, 오른쪽 골반과 다리 쪽에도 저린가? 싶은 느낌이 있긴 해요. 부딪히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목도 좀 뻐근하고요... 증상을 늘어놨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입원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예?? 부러진 곳도 없는데요?? 선생님이 차근히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은 통증이 있는 곳이 넓어서 하루 한 번 통원치료로는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고요, '저리다'는 건 신경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는 거라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네... 고민해 볼게요. 우선 침을 맞으며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엄마는 보험 플래너와 전화를 해보길 권했다. 다시 보험 플래너와 통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보험 플래너는 입원을 권했다. 어쨌든 몸이 재산인 직업인데 입원해서 치료 하시죠. 그 말에 입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7일간 한방병원에 누워 쉬면서 내가 나이롱 환자인가 아닌가를 고민했다. 부러진 데도 없고 깁스를 하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입원을 하는 게 괜찮은 일인가? 어쨌든 사고를 낸 사람도 지인이다보니 피해가 갈까 두렵기도 했고, 합의금 욕심도 없었다. (지금도 없다.) 다만 깔끔히 낫고 싶다(=사고 전과 같은 상태의 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 위해 치료를 받는 돈에 단 1원도 내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잘 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 쌩돈을..! 그런 느낌. 그렇게 누워있다보니 몸이 조금씩 아파왔다. 목이 점점 더 뻣뻣해지고, 오른손에 힘이 안 들어가고, 골반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본가에 살 땐 종종 침을 맞았던 것도 같은데, 오랜만에 맞아본 침은 생각보다 효과가 대단해서 놀랐다. 목에 침을 맞고서 만져보면 뭉쳤던 곳이 풀려있고, 오른손엔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골반의 통증도 좋아졌다. 아침 7시면 강제로 깨워져 밥을 먹었고, 저녁 10시면 병실에 불이 꺼졌다. 어쩌면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면서 꼬박꼬박 밥먹고 치료를 받는 게 이 입원의 의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퇴원 당일, 마지막으로 침을 맞으며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어쨌든 퇴원을 하게 되면 입원한 때보다는 많이 움직이게 되니 악화될 수도 있다고, 꼭 통원치료를 부지런히 하시라는 말을 들었다. 엇, 그런가 생각했는데 집에와서 입원 짐을 풀다보니 오른손 손목에서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참에 왼손잡이가 되어볼까 고민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타자를 치다보니 또 손목이 저릿한 게 그만 써야하나 싶다.

입원해있는 동안 할 게 없어서 내 주식들을 돌봤다. 물론 소액이지만... 입원 전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포니 AI를 10$에 5주를 샀는데 20$에 4주를 팔았다. 판 돈으로는 구글 주식을 소수점 구매했는데 어찌될란가 들여다보고 있자니 피곤해져서 괜스레 못 본 척을 했다. 최근 트위터에 애널리스트 평가 등을 올려주는 계정을 발견해서 내내 들여다보다가 아주 조금은 차트와 애널리스트 평가를 보는 법을 익혔다. 궁금증들이 많이 생겼는데 노트에 기록을 못해서 약간 슬펐다. 이제 퇴원을 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또 슬쩍 공부해 봐야지.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당장에 촬영을 나가는 건 부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집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으면서도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 딱 하나에만 지원을 했다. 만약 출근하게 된다면 통원치료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지만 그래도 몇 달 후에야 촬영을 할 것 같아서 괜찮치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분명 재테크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쩌다 사고 소식을 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에세이니까 괜찮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소액이지만 주식에서도 좋은 결과를 올렸으니 봐주려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보통의 나였다면 병실에 누워서 OTT와 유튜브 VLOG나 내내 보고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유튜브 재테크 채널들을 꽤 봤다. 20대에 집을 산 사람의 팁, 돈 아끼는 팁, 주식 팁... 세상에는 공부할 게 참 많구나 싶었다. AI 관련주를 산 사람으로서 AI에 대해서도 조금 공부했다. 갇혀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내 세상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합의금은 여전히 받을 생각이 없고 통원 치료는 지난하게 이어지겠지만 이 시기도 멋지게 보내야지. 말도 없이 브런치 연재를 중단했던 점을 사과드리며 쪼졸이 여러분, 또 여전히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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