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어느덧 계절이 또 바뀌었다.
처음 수리소를 떠날 때 불던 바람과는 조금 다르게,
이제는 초록이 무성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여름의 문턱.
햇살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바람은 조금 더 익숙해진 채로 아이의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갔다.
아이의 손에는 작은 노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사소하고 얇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건 편지였다.
받는 이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고,
주소도 없었다.
그저,
그날 빵을 나눴던 아이,
정자 아래 고양이와 함께 앉아 있었던 아이,
그리고 말없이 인사해 주던 고요한 세상에게
조용히 전하는 마음.
봉투를 쓰고,
그 안에 종이를 넣고,
입구를 꾹 눌러 붙이던 순간,
아이의 마음은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그날 네가 말없이 받아준 빵 한 조각이
내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했는지
아마 너는 모를 거야.
말없이 앉아 있던 네 곁이,
내가 처음으로 ‘괜찮아져도 되겠다’고 느낀 순간이었어.
그 따뜻함을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건네주고 싶어졌어.
고마웠어. 잘 지내고 있기를.”
아이의 마음속에는 그날의 온기,
말은 없었지만 서로를 알아보던 눈빛,
햇살에 물든 조용한 인사가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그 편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랐기에,
아이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다시 수리소가 있던 골목으로 향했다.
이미 수리소는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간판이 달려 있었지만,
창틀의 그림자나 벤치에 남은 햇빛의 자리는
그리움처럼 남아 있었다.
아이의 손은 벽 틈에 조심스럽게 편지를 꽂았다.
누가 가져갈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아주 우연히라도,
누군가에게 이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은, 보내는 순간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도착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흘러가 잔잔한 파동을 남기더라도,
마음은 그저 ‘보내는 일’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으니까.
아이는 편지를 넣고 나서
골목 끝까지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처음 떠났던 날처럼 조심스럽지 않았다.
길을 아는 사람이 걷는 걸음처럼
단단하고도 유연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곰 인형을 꺼내 안았다.
이 인형도 이제는 아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슬픔을 안고 있는 날에도,
무표정한 하루에도,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오후에도
함께 있었던 존재.
아이는 속으로 조용히 물었다.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대답은 곰 인형 대신
공원에 부는 바람이 해주었다.
이따금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
멀리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
그리고 가슴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주 작은 미소.
그래,
이제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마음 어딘가가 오래 고장 난 채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누군가의 눈에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면,
이 조용한 이야기가
당신 마음에도 무언가를 남겼기를.
아주 작게라도 괜찮아요.
단단하게 굳은 마음에
하나의 말랑한 틈이 생겼다면,
그건 시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