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절박한 침투, 생방송의 카운트다운

폭로 3분 전, 우리는 달리고 있었다

by Helia

시계는 자정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심은 이미 깊은 잠에 빠졌지만, 아진과 민호가 탄 차량은 침묵 속을 가르며 방송국 근처로 다가서고 있었다. 비상등도 끈 채 골목을 돌아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도심의 틈을 파고들었다.

“정문은 CCTV랑 열감지 센서로 도배돼 있어요.” 민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회로를 찾았어요. 방송국 옆 신축 공사장 지하에서 연결된 환풍 덕트. 경비 시스템 회피 가능할지도 몰라요.”

아진은 운전대를 꺾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USB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과 눈물, 사라진 기록과 진실을 품은 마지막 증거였다.

“생방송은 언제 터뜨릴 수 있어?” 아진이 물었다.

민호는 조수석에서 노트북을 펼치며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심야 뉴스 직전 3분, 혹은 새벽 4시 ‘진실을 찾아서’ 재방송 타이밍. 시스템 유지 점검 사이 틈이 생겨요. 3분… 그게 최대입니다.”

“3분이면 충분해.”

아진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망설임 없는 사람만이 가진 결의였다. 민호는 그런 그녀의横顔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전파를 장악하는 건 단순한 해킹 이상의 싸움이었다. 적은 단 하나, 류성민이 아니었다. 무감각한 대중과 왜곡된 기록, 그리고 시간.

그들은 방송국에서 멀지 않은 낡은 모텔에 잠시 몸을 숨겼다. 어두운 방 안,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붉은 네온사인이 천장에 얼룩처럼 번지고 있었다. 민호는 노트북을 무릎 위에 두고, 외장 배터리와 모바일 라우터를 연결하며 작업에 몰두했다.

“문제는 내부망이에요.” 그는 중얼이듯 말했다. “외부 IP는 무조건 차단이고, 내부 ID 중 하나를 위장해서 진입해야 해요.”

그때, 화면에 갑작스레 ‘접속 차단’ 메시지가 떴다. 민호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하네요. 이번엔… 백신 프로그램이 반응했어요. 분명 2단계 우회 프로토콜까지 적용했는데…”

“혹시…” 아진이 말을 멈추었다.

민호는 곧바로 또 다른 경로를 시도했고, 이번에는 서버 내부 경로 하나가 열리기 시작했다. “됐다… 그런데 너무 쉽게 뚫리네요.”

순간, 화면에 낯선 메시지가 떴다.

『누군가 돕고 있다. 서둘러라. - JD』

민호는 경악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 곧 아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 역시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JD…? 누군데?” 민호가 물었다.

아진은 입을 다문 채, 화면에 나타난 메시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오래전 들었던 목소리 하나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항상 백도어 하나는 열어놔. 네가 돌아올 길을 위해.’

그 목소리는 잊힌 듯 남아 있던 기억 속, 실험실 출입구 앞에서 아진을 바라보며 웃던 류신하의 얼굴과 겹쳐졌다.

“… 그럴 리가 없는데,” 아진이 낮게 중얼였다.

“누나?” 민호가 묻자,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집중하자. 기회는 지금 뿐이야.”

민호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확실한 건… 방송국 내부의 누군가가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거예요. 아군이든 함정이든, 지금은 달릴 수밖에 없어요.”

**

그들은 새벽 2시, 방송국과 연결된 공사장으로 침투했다. 헬멧과 조끼를 입은 채 인부로 위장하고, 공사 현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섰다. 허름한 환풍구 덕트로 기어가는 그들의 숨소리 위로, 무전기 너머 민호의 키보드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졌다.

“이제 시스템 백도어 진입 완료. 정규 방송 끊기면, 자동 전환 신호 송출해요. 누나, USB 준비됐죠?”

아진은 주머니에서 검은 USB를 꺼내 들었다. 표면에 희미하게 비치는 글씨.

『Project: 오버로드』

그들이 겪은 지난 모든 고통과 죽음, 그리고 조작된 기록의 진실이 담긴 영상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노인의 얼굴이 된 이소진, 귀문능력자였던 류신하의 실험 자료, 사라진 의료기록과 비밀 계좌까지.

그 순간, 건물 외벽 감시 센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민호는 노트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들켰어요. 내부에 감지 됐어요. 빠르게 처리하죠.”

방송국 메인 서버에 접속하자,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서버 중앙 영상 시스템에 누군가 미리 편집한 파일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JD_UPLOAD_V1』

“이건…” 민호가 중얼였다. “우리가 올릴 파일이랑 내용이 거의 동일해요. 누가 먼저 올렸다는 거야?”

그러자, 또다시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마지막 퍼즐은 당신 손으로. - JD』

아진은 주저 없이 USB를 꽂았다. “우리는 끝까지 확인해야 해. 진실을 온전히 보여주기 전까진 안 끝나.”

민호는 빠르게 플레이 명령을 전송하고, 방송 송출 타이머를 맞췄다. “3분 뒤, 전파 장악 개시. 영상 재생까지 180초. 준비됐어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분.

2분 30초.

2분.

방 내부 경고음이 울렸다. 침입 감지. 누군가 빠르게 접근 중이었다. 그리고 1분을 남기고, 방송국 보안 인력이 들이닥쳤다. 그들 뒤로,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늦었군, 정아진.”

류성민이었다.

총구가 민호를 향했다. 순간, 아진이 몸을 날려 민호를 감쌌다. 카운트다운은 10초를 남기고 있었다.

민호는 손끝에 온 힘을 실어 마지막 키를 눌렀다. “이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야!”

0초.

정규 방송은 끊겼고, 화면은 먹통이 되었다가 이내 검은 배경 위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세계 위로, 프로젝트 오버로드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깨어나기 시작했다. 전국의 방송 화면에 비친 것은 단순한 폭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고통과 침묵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아진은 조용히 속삭였다.

“진실은 결국,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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