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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달이 스러진 자리

칼끝에 묻은 달빛

by Helia

달은 기울어 어둠 속에 삼켜지고
새벽은 아직 이르건만
검은 구름은 길을 가로막는다.

칼은 남의 피를 적시며 노래하지만
그 노래 끝은 칼잡이의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핏빛 강물은 바다를 메우지 못하고
끝내 바다는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간다.

기억되지 못한 꽃은
봄의 바람에도 향기를 남기지 못하고,
이름을 잃은 씨앗은
낯선 흙 속에서 외롭게 스러진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물이 적신 작은 종이 위 글씨는
천 년을 건너도 지워지지 않고,
한 줄의 문장은 폭풍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왕의 자리도, 칼의 노래도,
붉은 강물도 사라질 터이나
붓끝에 새겨진 진심만은
새벽을 부르는 종소리처럼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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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