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지난 여름날, 썼던 글입니다...
지난주엔 시쳇말로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한여름 감기에 걸려, 그것도 심해서 병원을 두 번이나 찾아갔다. 3층. 걸을까 하다가 기운이 없길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로 했다. 누군가 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허리가 살짝 굽은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오고 계셨다. 머리에는 이미 흰 눈이 내려앉아 검은 머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른 몸 때문에 그리 크지 않은 옷이 헐렁헐렁 흘러내릴 것처럼 보였다. 다리가 한쪽이 불편하신지 지팡이를 짚고 땅에 끌다시피 하며 걷고 있었다.
병원 유리문이 버거워 보여 열어 드리고 먼저 진료를 보시라 했다. 급할 것도 없었고 왠지 짠한 마음이 들어서 뭐든 해 드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을 가니 대기의자에 구부정한 등을 하고 앉아계셨다. 옆에 슬그머니 앉았더니 먼저 알아보시고 말씀을 하셨다. "젊은 사람이 어째 아파..." 그 말에 따스함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시원하게 콩나물국이라도 만들어 먹을까 하고 들른 마트에서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한 손엔 라면과 담배 등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마트를 막 나가시는 길이었다. 마트에서 나와서도 뒷모습을 보게 됐다. 한 골목으로 들어가셨는데 대문이 잠겼는지 몇 번 흔들어보시더니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리곤 공원 의자에 한참을 앉아계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나도 한참을 그 근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뒤쪽으로는 꼬마 아이들 몇이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고, 내가 서 있는 길로도 사람들이 내 앞 뒤로 스쳐가고 있었다. 그런 틈에서 할아버지는 세상자체가 낯선 사람처럼 따로 앉아계셨다.
할아버지의 굽은 등, 푹 꺼진 두 눈, 마른 몸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만 아버지 생각이 났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셨다. 살아계시다면 지금 여든넷이셨을 테니...
어릴 때 보았던 내 아버지의 어깨는 한없이 넓고 단단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등에 업혀 동네에 가끔 오던 서커스단을 보러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십대가 되고 이십 대가 되면서 내가 자라는 만큼 아버지의 어깨는 자꾸만 좁아지고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사실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앞 모습만을 보고 살아왔다. 그나마 어른이 되면서 보이기 시작한 아버지의 등은, 이미 당신보다 훨씬 더 큰 짐을 짊어지고 계셨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햇살이 쨍해서 눈을 가늘게 떠야 했던 어느 날, 문득 그 가늘게 뜬 눈으로 들어온 당신의 등은 십대에 보았던 단단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강한 햇빛 때문에 작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마른 몸, 구부정한 어깨와 쭈글쭈글한 손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는 종종 걸음으로 10분에서 15분 정도가 걸렸다. 그 시간 동안 항상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가는 길이에요, 드시고 싶은 거 있음 사가려고 하는데, 뭐 사갈까요? 하고. 워낙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 셨지만 딸의 목소리만큼은 반기셨다. 무뚝뚝한 목소리였지만 내가 들어서면 그분 눈에, 요샛말로 하트가 뿅뿅 켜지는 게 보였다. 주무시기 전에도 항상, 편히 주무시라고 인사드리면서 볼에 뽀뽀를 해 드리곤 했다. 다 큰 딸이지만, 그런 표현을 하루라도 거르는 날이면 못내 서운해하는 모습에 습관처럼 매일같이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온기를 전하고 받으면서 그분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회사에서 병원으로 가는 내내,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도 흘릴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씩씩하게 지냈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한 달이 지나자 빈자리가 느껴졌고, 한참을 앓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저 아버지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장 힘들었던 건,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십 분, 십 오분의 공백을 견딜 수가 없었던 거다. 언제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를 드렸던 아버지가 더는 계시지 않다는 것... 전화를 드릴 수 없다는 것. 그 후로 몇 년간을 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전활 하는 대신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버릇이 생겼다. 길을 지나다가, 상점을 들르다가, 시장을 가다가, 무슨 일을 하다가, 버스를 타고도, 등이 굽은 할아버지를 보면 한동안 눈길을 돌릴 수가 없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분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는 일. 자꾸만 내 아버지의 등인 것만 같서, 한 번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진지는 드셨는지 어디 아프신 곳은 없는지 왜 혼자 기운 없이 다니시는 건지... 그 거친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할머니들을 볼 때와는 달리 아버지 생각에 할아버지들께 마음이 더 많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내 아버지도 길을 걸을실 땐 저렇게 지친 어깨로 걸으셨을 텐데. 마른 몸, 쭈글쭈글했던 당신의 손으로 딸을 주려고 시장에서 수박 한 통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을 텐데.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피곤에 지친 다리를 쉬시느라 잠시 공원 의자에 앉아 바람의 소리를 듣기도 하셨다가 집으로 향하기도 하셨을 텐데.
바람이 불어와 기침이 콜록, 나오기 전까지 그 자리 그대로 서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앉아계시던 할아버지도 다 쉬셨는지 힘겹게 일어나 다리를 끌며 어디론가로 향하셨다. 그 뒷모습이 외로워 보여 길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실 때까지 바라보고만 있었다. 볼을 스치는 바람만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한 게 자꾸만 마음이 쓰여서, 마음이 아려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그 작은 등과 어깨가 잊히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잊히기도 하겠지만, 매번 수고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서 낙인처럼 좁아진 어깨의 할아버지들을 보게 된다면 다시금 마음이 아려오겠지. 그리고 또 내 아버지의 등과 어깨를, 손을, 얼굴을, 그 미소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게 되겠지.
길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신 할아버지가,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셨으면... 슬프고 힘든 일 대신 기쁘고 즐거운 소식을 많이 듣고, 따뜻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그렇게 잘 살아 계셨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