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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Sep 28. 2022

마흔 즈음에

마음속 어린 나를 토닥토닥 다독이며 오늘도 한 걸음.

2022년 9월 12일 일기


나는 여전히 당신이 밉다. 하지만 요즘 들어 틈만 나면 사과를 하는 통에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제도 나와 언니를 나란히 앉혀두고 지난날 잘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언니의 딸이자 나의 조카인, 당신의 손녀가 예쁠수록 더욱 느낀다면서.

우리에게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따지려면 몇 날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다. 한두 번 사과하는 걸로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절반 이상 누그러졌다. 이럴 때 보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참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어제 이야기를 나누다 태풍 매미 때 우리 집 현관문이 통째로 깨져 한밤중에 난리가 났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술에 취해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엄마와 언니와 나 셋이서 밤새 부둥켜안고 앞이 막막했던 날. 난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여태 살면서 날씨의 영향으로 크게 피해를 입어본 적이 없다고, 불과 며칠 전 남편에게 감사한 일이라며 이야기했었다. 큰 사건이라면 사건인 날도 엄마와 언니가 말해주지 않으면 기억 못 하니 당신에 대한 무수히 안 좋은 기억들 역시 대다수는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고맙게 여기라는 결론이었다.


시작은 반이지만 나머지 반은 아직 멀었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면 모든 앙금이 눈 녹듯 녹지 않을까 싶었던 건 착각이었지. 맺힌 게 너무 많아서 잘 안돼. 그냥 괜찮은 척 묻어놓는 거야. 내가 편하려고.




추석 연휴 마지막 날부터 제주는 한참 동안 흐렸다. 거의 일주일 만에 해가 쨍한 날, 후덥지근한 더위를 느끼며 냉면을 떠올렸다. 가장 좋아하는 냉면가게는 회사에서 차로 30분을 운전해 가야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므로 망설임 없이 달려가 냉면을 먹었는데 다른 날보다 더 감칠맛이 돌고 맛이 좋아서 순식간에 다 먹었다.

물론 과장법이다. 난 순식간에 다 먹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먹기 대회를 한다면 1등 할 자신이 있을 만큼 입놀림이 느리고 소화도 더디다. 마음과 달리 입안에서 한참을 머무는 메밀의 향을 느끼며 냉면을 오물거리는데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A : 아니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36살이었는데 이제 내일모레 마흔이래요. 기분이 확 달라요.
B : 다를 게 뭐가 있어? 같은 사람이잖아.
A : 너무 나이 들었잖아요.. 내일모레 마.흔.이라니... 늙어서인지 체력도 약하고 기능도 예전만 못하고.
B : 너는 나이 안 드는 것처럼 말하네. 그리고 나도 곧 마흔인 거 몰라?
A : 아 그게..! 언니 말고 남자 친구로서 말이에요. 뭘 해도 무기력하고 기능이 진짜 확 떨어져서 뭘 할 수가 없다니까요.
B : 목소리 좀 줄여! 하 진짜 그놈의 기능.. 너 마흔 살 되면 내가 성대한 파티 열어줄게.


이런 식의 대화였다.


현재 서른여섯이고 내일모레 마.흔.이 될 사람으로서 B의 말을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넌 나이 안 들 줄 아냐?" 그리고 난 똑똑히 봤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아기 아빠의 타오르는 눈빛을.

두 사람의 대화 중에서도 특히 '기능'에 대해 말할 때는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컸고, 하필이면 그들을 제외한 식당 내 손님들이 일순간 조용했다. 벽 끝 테이블에서 A는 벽 쪽을 향해 앉아 몰랐겠지만, 그리 큰 식당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그들의 대화를 들을 노력 없이 들었을 것이다.




엊그제 남편이 물었다. 마흔 살이 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글쎄, 그 기분을 미리 느끼고 싶지 않은데..' 생각하며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예전 무한도전 시절 노홍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너무 재밌었다며 마흔 살도 기대된다고 했다나.


스물아홉에서 서른 살이 될 때 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그렇게나 들었고 괜스레 울적했다. 하지만 그동안 내 의지대로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해봤는데 벌써 서른이라니?! 하는 마음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그리곤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 아무 연고가 없는 제주로 독립했다.

돌이켜보면 딱 서른 살이 되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나답게 살기 시작했으니 당시 울적했던 기분과는 별개로 하고픈 걸 다 해보는, 재미난 시기였다. 어쩌면 서른 살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같은 사람은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도무지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헤매던 내가 양지바른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고 있다니.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내 의지와 감정을 숨기고 살았다고 하면 될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온 식구가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을 혼자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고, 잘못한 것 하나 없이 단지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묘하게 괴롭히고 때론 폭력을 행사하고 내 입이 더러워질까 봐 입에 담기도 싫은 욕을 서슴지 않으며 이상한 설교를 해댔다고,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매일매일 초조하게 살았다고 하면 될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지만 30년을 내리 고생했으니 남은 삶에서는 그리 최악의 상황을 만나지 않을 거란 기대를 한다. 상처도 웬만큼 받았으니 더 이상 받고 싶지 않고 매일 불안과 공포 속에 떨며 살았으니 편안하고만 싶다. 그 30년의 후유증을 바로 지금, 온갖 형태로 앓고 있으니 마흔 살이 넘으면 몸과 마음의 통증마저 훌훌 털어버리고 더욱 괜찮아지지 않을까.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밀란 쿤데라

서른 살이 되도록 제발 내가 있는 곳을 떠나 자유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떠나온 지금, 엄마와 언니마저 함께 할 수 없어 자주 외롭지만, 더 이상 내가 있는 이곳을 떠나길 바라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고 지금에 만족하며 좋은 일만 있을 거라 믿는 앞날을 기다린다. (여기서 좋은 일이란 '뭔들 그때보단 낫겠지'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마흔 살이 되는 걸 기대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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