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그림을 처음 배울 때 시작하는 것은 '선긋기'이다. (배웠다해 봐야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수많은 영상들과 무료 클래스를 통해 배운 것이다.) 세로, 가로, 대각선을 긋고 구불거리는 선을 긋다가 동그라미부터 점점 형태가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선긋기 연습은 지겹다. 초보자들이 으레 그렇듯 빨리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름 작품이라 할 만한 그림을 그려내다가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선을 긋는다. 요즘 내 모습이다. 반듯하게도 그어보고 삐딱하게도 그어보고 힘을 주었다가 뺐다가 적당히 힘을 들여보기도 하는데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글씨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글씨에서는 좀 더 손에서 힘을 빼야 하는데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손 끝에서부터 어깨까지 힘이 잔뜩 들어가 나중엔 뒷골이 땅길 지경이다.
어느 새벽에 하도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5분 안에 잠들게 해 준다는 수면 유도 영상을 틀어둔 적이 있다. 손끝과 발끝부터 차근차근 몸의 힘을 빼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익히 들어봤지만 도대체 힘을 어떻게 빼라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차에 영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힘을 어떻게 빼는지 모르겠는 분은 그 부분에 힘을 잔뜩 줬다가 다시 빼 보세요.... 네, 바로 그 느낌이에요."
잠들기까지 5분은 너무 짧았고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여느 날처럼 선을 이리저리 긋다가 마음의 선을 긋는 방법, 그리고 마음의 힘을 빼는 방법도 누군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져서 싫은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으려 도망치기 바쁘고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해 벽을 쳐버리곤 하니까. 아니면 힘을 너무 많이 주다가 스스로 폭발하거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우울의 나락, 나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감정들, 모든 상황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음에도 알 수 없는 굴레에 갇혀있는 듯한 기분 등은 '예민하다'는 말로 치부하기엔 설명하기 어렵다. 옆에 늘 함께 하는 이는 조금도 모르게, 속으로만 뻗어가는 검은 뿌리를 잘라내고 싶다. 잘라낼 수 없다면 더 이상 뻗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싶다.
엄마보다 세 살 아래인 작은 이모는 2016년 3월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작은 이모의 딸, 그러니까 나의 이종사촌 A는 나와 동갑이다. 나는 A보다 이모와 더 닮은 얼굴이어서 A는 한동안 본인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나에게 전화하곤 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엄마를 잃은 슬픔을 차마 가늠할 수 없었다. 나의 마음도 아팠지만 그녀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항상 웃으며 받아주었고 멀리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마음으로 늘 A를 챙겼다. 전화가 걸려오는 시간이 점점 들쑥날쑥해지던 어느 날, 그녀가 보낸 사진에 충격을 받았다. 이미 몇 번이나 칼을 댄 자국 위로 또다시 손목을 그어 피가 낭자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나는 징그러운 걸 잘 보지 못한다. '징그럽다'는 말조차 싫어서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내 손으로 쓰지 않고 내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냥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너무 험하게 생긴 괴물이 나온다거나 피가 많이 나오는 영화, 무엇이든 오밀조밀 패턴으로 보이는 영상이나 사진, 특히 한창 유행하던 좀비 관련 영상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보고 금세 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몇 날 며칠 잠들지 못한다. 눈을 뜨면 천장과 벽에 보이고 눈을 감아도 검은 배경에 생생히 떠오른다. 가까스로 잠이 들면 꿈에 나온다. 이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을 만큼 지독하게 괴로웠던 경험을 어린 날 몇 번 한 뒤로 '그런 영상'은 아예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최소한의 설명을 하는 지금도 너무 괴롭다.
A가 보낸 사진은 가히 충격이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이야기를 쓰기까지만 5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사진을 먼저 보낸 그녀는 이내 전화를 걸어왔다. 놀란 내가 말을 잇지 못하다가 괜찮냐고 겨우 물었을 때, 그녀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도대체 어디까지 그어야 죽는 걸까? 이번엔 꽤 깊이 힘줘서 그었는데 아직도 살아있잖아. 겁이 많아서 마음 편히 죽지도 못해. 히히히"
우울증이었던 A는 약물 치료를 하다가 증세가 호전됐을 무렵 약을 줄이고 있었다. 병원에서 술은 절대 마시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술을 마신 날이었다. 나는 그녀가 걱정스러우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컸지만, 나의 마음 역시 많이 힘들던 시기였다.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는 그날의 장면이 한참 동안 날 괴롭혔다. 그때 결심했다. '난 의사도 아니고 심리상담사도 아니다.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도 없고, 들어주는 건 나 자신도 벅차니 우선은 내 마음을 챙기자.' 조금은 이기적인 결심으로 얼마 간 A와 연락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왜 이리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악한 권세가 주관하는 이 세상이라는 곳 자체가 지옥인 걸까. 하지만 하루를 살아도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고 싶다. 이 답답한 내 마음을 누가 알까.' 요즘 많이 하던 생각이었다. 죽고 싶지 않지만 살고 싶지 않은 나날의 연속. 어릴 때부터 늘 죽지 못해 살았다는 말이 맞다.
아빠를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싶었고 엄마가 날 두고 도망갈까 봐 밤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잤다. 매일 죽고 싶다고 말하는 언니가 진짜 어느 날 갑자기 죽을까 봐 불안해하며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가난하고 불행할 이유가 없었는데 병적인 한 사람으로 인해 식구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이제는 모든 상황이 좋아졌고 그렇게 기도했던 대로 집에서 떨어져 나와 사랑하는 한 사람과 살고 있지만, 유년시절의 괴로움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고 날 놓아주지 않는 기분이었다.
커다란 돌덩이 같기도 하고 어둠의 그림자 같기도 한 그것은 틈만 나면 날 괴롭혔다.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대부분의 외부 자극에 유난히 민감한 나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서 불쑥 찾아오는 괴로움에 자꾸만 아팠다.
오은영 박사와 김창옥 교수 등의 강연과 방송을 보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 퇴근길에 들를 수 있는 심리상담센터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주차가 쉽고 한산한, 동시에 다정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책을 읽었다. 제목을 보자 날 위한 책이라고 직감했던,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을 암으로 떠나보내고, 약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들을 돌보며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가까운 부모와 자식, 형제, 부부간에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 갖가지 전염병 같은 정신질환을 주고받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고,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워지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을 펑펑 울었는지 모르겠다. 잊으려고 지우려고만 했던 고통의 순간들이 한 번도 날 떠난 적 없다는 듯 생생히 떠올랐다. 엊그제 밤엔 열일곱 살 어느 날을 꿈속에서 만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떠오르는 순간들을 직면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자꾸 한 맺힌 이 마음을 풀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퍼즐 한 조각을 마침내 찾은 것 같다. 이제는 조금 편해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p.60-61
NPD(자기애성 인격장애) 부모들이나 그 밑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잘 발견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NPD 부모들 대부분은 남들 앞에서는 매우 모범적으로 자신들과 그 가족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NPD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뇌질환을 촉발시키는 에이전트 역할을 한다. 때때로 ‘남들 보기에 모범적인 부모들’ 밑에 병든 자녀들이 숨어 있다.
p.68
암이 죽음의 한 원인이듯이 우울증도 죽음의 한 원인이다. 암으로 인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듯, 우울증으로 인한 죽음도 병사이다. 즉 폐암으로 죽은 사람이나 뇌기능장애로 인한 자살이나 모두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들 죽음에 대해서 차별적 시각을 제거할 수 있는 의학적 증거의 홍보가 필요하다.
p.85
아직도 대다수 일반인은 자신이 뇌기능장애나 정신질환과는 무관한 지대에서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대부분 인간은 증상이 가볍거나 무거운 상태의 차이일 뿐, 정신질환의 한 스펙트럼에 포함돼 있다. 정신질환은 특정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질환을 겪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자극이나 계기를 통해 발병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이다. 여러 정신의학자가 거의 모든 사람이 정신병의 범주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
p.107
현대사회 인간들의 삶의 목적은 즐거움과 번영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 고통은 불행한 재앙으로 치부되며 이 삶에서 제거돼야 할 것들로 여겨진다. (중략)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마약 같은 슬로건은 개인주의,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등하며 결국은 수많은 개인 앞에 실패로 모습을 드러낸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적 꿈이다. 인간의 무한대의 욕심과 이기주의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의 원인이다.
p.117
병이나 고난은 조상의 죄 때문이 아니다. 한 개인이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는가가 유전자의 활동 방향에 영향을 끼친다. 정신질환자들이나 가족들이 떳떳이 사회로 나와 치료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종교, 유전학설 등과 연관된 사회의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적 시각이다. 물론 환자의 병적인 폐쇄성이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이 폐쇄성은 치료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p.125
신학자이면서 신앙인이었던 그는 아내의 질병과 가족들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 답을 알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p.134
가해자로서 정상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고, 피해자로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있다. 정상생활을 하는 가해자,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 중 누가 더 심각한 환자일까. 우리 가족들 중에 이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p.156
뇌질환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신은 아프지 않다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심리치료인들은 이것을 부정(denial)이라고 부른다....(중략)... 문제는 이들 중 일부는 '정상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면서, 그 주변인들과 가족에게 이 뇌질환을 전파한다는 것이다. 강박과 스트레스, 때로는 억압, 폭력의 수단을 사용한다. 이런 것들을 사용할 때 그들의 심리 상태는 항상 '자신은 옳다'는 확신이다.
p.162
선한 자의 고통과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동떨어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아니다. 그런 비극은 우리의 삶에서 제거돼야 하고, 삶은 풍성함과 평안으로만 가득 채워져야 한다는 인류의 환상. 이 같은 행복 추구는 환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 풍족한 물질을 추구하는 이상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고통이 그토록 충격적인 이유는 삶의 이유를 쾌락과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두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역할을 이 같은 개인의 자유와 물질주의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보조자나 위험부담을 처리하는 보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고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삶이라는 그림을 꼬아가는 실타래의 한 줄기이다. 개개인마다 그 고통의 실타래의 색깔은 다르다. 우리는 ‘왜?’라고 자꾸 질문하지만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답을 벌써 내놓았다. 질문도 벌써 있었다. 십자가가 그 질문이며 또한 대답이다.
p.242
싸움에서는 치러야 할 고통이 있다. 고통이 없는 상태는 마리화나, 마약에 취한 상태와 다름이 없다. 고통이 우리의 잘못된 길을 알려준다. 고통을 통해서 병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나병처럼 고통이 없는 병들이 더 치명적이다. 고통은 죄나 악이 아니다. 많은 경우 고통은 육체적 질병을 발견하는 수단이고, 죄나 악을 극복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자, 뇌기능 장애자들의 고통은 발견되기 어려워서 치료가 어렵다. 대다수 사람이 정신질환자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나병처럼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병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p.299
고통과 죽음을 이기는 것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다.
p.309
그의 삶의 목표는 간단했다.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기는 대부분 정신질환자, 뇌기능 장애자와 그 주변인들의 삶의 모습이며 목표이기도 하다. '내가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삶은 불안전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살아남기의 시작이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라는 걸 알았다.
A는 죽고 싶어서 손목을 그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살고 싶다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린 시절 언니는 매일 죽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만큼 살고 싶어 했다. (지금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아이를 기르며 잘 지내고 있다.) 나 역시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살고 싶지도 않아'라고 말하면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삶이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고통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기쁨과 생명 또한 있는 인생에서 이왕이면 죽음보다 삶을 노래하며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에게 책의 제목을 말하고 내용에 대해 설명하며 나도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매우 놀란 눈치였다.
"아니야, 당신은 건강해."
하고 애써 부정하며 놀란 마음을 추스르려는 그의 시도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농담인 척 넘겼지만 기분이 씁쓸했다. 회사일을 마치고 저녁에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내가 좀 못 미덥고 모자라지만 노력할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