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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Aug 11. 2022

Let me be there

의식의 흐름, 아무튼 결론은 여행

8월 9일


내가 팝송을 듣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였다. 영어 선생님이 팝송 가사를 타이핑해와서 뜻을 해석해주고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때까지 노래를 불러 익히게 한 것이 시작이었다.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의 'Let Me Be There'와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My Love', 제시카(Jessica)의 'Goodbye' 이렇게 세 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느리고 정직한 박자에 탁탁 들어맞는 가사. 내가 선생님의 입장이었어도 그 노래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교과수업시간은 아니었고 방과 후였나, 토요일이었나.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때를 계기로 HOT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원타임이 아닌 엔싱크(N’sync)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알리샤 키스(Alicia Keys) 등 팝가수로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었으니 배철수 아저씨와 함께한 세월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랄까. 나에게 있어 올리비아 뉴튼 존의 'Let Me Be There'라는 곡은 팝송 중 첫사랑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20년이 지났어도 어디선가 그 노래가 흘러나오면 중학교 교실 풍경이 눈앞에 스치면서 자동으로 가사가 떠오른다. 마치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와 같다. 자연스레 그녀의 싱그러운 목소리와 빛바랜 노래들은 언제나 내 가슴을 울린다. 첫사랑 같은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미국 현지 시각 8월 8일)을 아침에 듣고 하루 종일 'Let Me Be There'와 'Physical', 'Xanadu' 등을 흥얼거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가슴에 묻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때도 혼자 한참 동안 마음이 허했다. 우리나라 가수들보다 팝가수들에 대한 애정이 깊으니 (그들의 노래를 훨씬 많이 들으며 자랐으니) 어쩔 수 없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 누구도 이 부분을 잘 공감해주지 못하는데 하필 배철수 아저씨는 3년 만에 휴가를 떠났다. 오늘 그가 자리를 지켰더라면 피디 말마따나 음악캠프 1부 혹은 2부 전체를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로 가득 채웠을 텐데. 플레이리스트를 그녀의 노래로 채우고 그녀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그리스>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는 밤이다.




8월 10일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를 반복해 듣다가 반복 재생을 해제하자 재생목록에 함께 저장되어 있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의 앨범 [Riot on an Empty Street]을 반복 재생했다. 'Homesick', 'Cayman Islands', 'Know How'... 앨범 수록곡 전체를 읊어야 할 만큼 모든 노래가 좋아서 언제나 통째로 듣게 되는 앨범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가 아주 어린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과 같다면,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노래는 사춘기를 지나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통과의례처럼 앓게 되는 열병과 같다고 해야 할까.

그 열병의 최고 절정기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멤버 얼렌드 오여(Erlend Oye)의 'Garota'이다. 곡의 제목 'Garota'는 포르투갈어로 '소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뮤직비디오엔 한국을 배경으로 얼굴도 마음씨도 예쁜 배우 이하나가 등장하기도 한다.(이하나와 얼렌드 오여는 실제로 인연이 깊다.)

먼 나라 노르웨이의 가수와 그들의 주옥같은 노래를 알게 해 준 누군가를 기억하며 노래를 들을 때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마음으로 전한다. 

당신이 알려준 음악을 아직도 즐겨 듣습니다.
듣다가 가끔 궁금해요.
당신을 몰랐어도 지금의 내가 이 노래를 알고, 듣고 있을지.
다른 이를 통해 혹은 다른 매체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어 듣고 있다면,
그때의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할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8월 11일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아침을 먹는 동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예전에 방송한 <꽃보다 할배> 오스트리아 편을 잠깐 시청했다. 여행 일정의 마지막 며칠, 쇤브룬 궁전을 걷고 클래식을 듣고 슈테판 대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벨베데레 궁전에서 그 유명한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을 감상하고 대망의 마지막 밤 오페라하우스에 입장하는 장면까지 보다가 출근했다. 조금만 걸어가고 달려가면 손 닿는 곳에 미술책에서나 보던 예술작품이 원본 그대로 걸려있고 그냥 거리를 걸어도 역사와 전통이 깃든 건축물이 즐비한 곳에 살면 늘 보이고 들리는 대로 예술적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겠다, 조금 부러워졌다.


출근을 하려고 차에 시동을 켜자 주유 등이 떴다. 맞다, 어제 퇴근할 때부터 주유 등이 깜빡거렸지. 회사 바로 앞 자주 가는 주유소가 있지만 15km를 더 가야 하니 아무래도 불안했다. 회사에 가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조금 돌아가는 듯하지만 신호가 없어 쭉 달릴 수 있는 해안도로와 길은 짧지만 신호가 많은 일반 도로. 바다는 매일 봐도 좋기 때문에 난 매일 해안도로를 이용하지만 주유소를 들르기 위해 오늘은 일반 도로를 택했다. 주유를 하고 회사로 향하는 도중에 공항을 지나쳐야 한다. 진작부터 긴장을 하긴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잘못 타서 공항을 지나치지 못하고 들렀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혹은 떠나온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하거나 마중 나온 차가 즐비한 곳에 한동안 발이 묶여있다가 먼 길을 돌아 출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예술적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고, 난 자꾸 어디든 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이렇게 조금만 가면 공항이 있고 여객터미널이 있고, 보이는 것이 온통 비행기와 배니 별 수 있나. 마음대로 희한한 결론을 짓고는 다가오는 주말에 무얼 하면 좋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지난밤엔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먼저 나온 제목으로 <상실의 시대>지만 원제에 충실한 건 <노르웨이의 숲>이 맞고 나도 후자가 더 마음에 든다. 몇 번째 읽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몇 번째든 어느 때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좋다. 핸드폰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어도 만약을 대비해 충전을 유지하듯 무라카미 하루키를 충전했다. 어제오늘 노르웨이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그리 되었다. 분명 시작은 올리비아 뉴튼 존이었는데 나는 왜 그녀를 생각하며 다른 나라 남정네들의 목소리에 새삼 심취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있는가.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는 충전했으니 이제 '여행' 충전이 남았다.

물론 여행길엔 올리비아 뉴튼 존과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도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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