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_7화

by 무우지렁이

※ 공모전 출품을 목표로 집필 중에 있습니다. 중간중간 편집/보완되며 내용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기존 4화가 7화로 밀렸습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 구직과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방안을 알아보고 저녁에는 치킨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일손을 돕는다.


유리에게 루틴이 생겼다. 할 일이 생기자, 불안함도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어느 오후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아르바이트 면접이라도 잡힌 건가?' 유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침착한 척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지원해 주셨던 '아이조아 엔터'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근무가 가능하신지 여쭙고자 연락드렸습니다."


'됐다!' 드디어 첫 아르바이트가 잡힌 것이다. 주말 오후에 사무보조라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되려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가능합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홍대 어서오라냥 고양이 카페로 와주시면 됩니다. 하실 일은 공고에서 보셨듯이 인형탈을 쓰시고 전단지를 나눠주시는 일이고요. 옷은 최대한 얇고 편한 옷으로 입고 와주시면 되세요."


'고양이 카페라니? 그리고 인형탈 아르바이트라니?' 그런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유리에게는 뭐라도 일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네! 감사합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유리는 소리를 질렀다. 속상한 원룸에 유리의 기쁨이 울려 퍼졌다. 비록 원하던 아르바이트는 아니지만 오랜만의 일자리에 기분이 좋다.




토요일이 되었고 어서오라냥 카페로 갔다. 카페에 들어서자 유리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가히 천국이었다. 초겨울인 11월의 바깥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풍경이 유리는 맞이해 줬다.


우아하게 꼬리를 흔들며 귀족처럼 걸어가는 페르시안, 짧은 다리로 캣타워를 올라가려고 낑낑대는 먼치킨, 회색으로 빛나는 러시안블루와 하얀 터키쉬 앙고라도 있다.


한쪽에서는 접힌 귀 덕에 동글동글한 얼굴을 가진 스코티시폴드가 몸을 말고 동그랗게 자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무심하게 식빵을 구우며 앉아있거나 어슬렁거리는 이름 모를 다양한 품종과 무늬를 가진 고양이들이 보인다.


그때, 하얀 바탕에 갈색 너구리 얼굴과 파란 눈을 가진 랙돌이 유리에게 다가왔다.


'귀여워...!'


다가온 랙돌을 쓰다듬으며 골골송을 듣고 있는데, 카페 사장님께서 인형탈 소품들과 함께 인간배너와 전단지를 건넸다.


"어디서 갈아입으면 되나요?"

"옷 위에 바로 껴입으시면 되세요. 신고 오신 신발은 여기 신발장에 보관하시면 되고요."


인형탈과 털옷에 장갑과 신발까지 장착하자 유리는 순식간에 노란 고양이가 됐다.


그제야 유리는 옷을 편하게 입고 오라고 하신 이유를 깨달았다. 인형탈과 옷은 너무 덥고 불편했다. 게다가 인형탈의 눈구멍으로는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털옷 때문에 무릎이 걸리고 신발도 불편해 걸음걸이도 엉성해졌다.


덕분에 인형탈을 쓴 사람들이 귀여운 척을 하기 위해 총총 걸은 것이 아니라, 정말 앞이 안 보이고 걸음걸이가 불편해져 자동으로 총총걸음이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사장님께서 노란 고양이의 등에 인간배너를 장착해 주셨다. 노란 고양이가 된 유리는 사장님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흐아아아....'


노란 고양이는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진이 빠져버렸다. 어렵사리 거리로 나오자 사장님께서는 노란 고양이의 손에 전단지 뭉치를 들려주시며 '잘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시고는 다시 가게로 올라가셨다.




인형탈을 쓰면 착용자의 입장에서 단점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의 장점도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거친 세상으로부터 두꺼운 옷으로 보호받는 느낌도 받았다.


평소에는 낯가림이 심해 대화도 힘들었던 유리였다. 하지만 외모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뵈는 게 없어서일까. 인형탈은 유리에게 이유 모를 자신감도 만들어 주었다.


노란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팔을 쭉 뻗어 전단지를 권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아줬다. 유리는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처럼 기뻤다.


가끔 인형탈이 무섭다며 멀리 돌아가는 사람들이 보이면 유리는 자신이 소외당한 것처럼 시무룩해졌다.


"귀여워!!"


유리 또래의 여자 두 명이 소리 지르며 노란 고양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노란 고양이도 엉겁결에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포즈를 취해줬다.


그렇게 노란 고양이와 처음 보는 여자들은 친한 친구들처럼 사진을 찍었다.


"고마워! 이따 또 봐!"


그녀들은 노란 고양이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고양이카페로 올라갔다.


노란 고양이는 신이 났다. 춤도 추고 장난도 치며 전단지를 권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아줬다.


산책 나온 강아지가 노란 고양이를 보고 짖었다. 강아지의 주인은 당황해 강아지를 안아 올리고는 길을 재촉했다. 노란 고양이는 자신을 보고 짖은 강아지가 귀여워 인형탈 안에서 함박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일을 할수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땀범벅이 되었지만 즐거웠다. 고되지만 무섭지는 않다. 되려 재미도 있다. 이런 일이라면 몇 번쯤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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