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쇼핑몰, 주얼리가게 - 전 국민 정지버튼
쇼핑몰에서 나오자, 나만의 가게를 차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고민이 이어졌다.
‘무엇을 팔아야 할까?’
내가 좋아하고, 재고가 생겨도 부피가 크지 않고, 혹시 접게 되더라도 처리하기 쉬운 것.
내 선택은 ‘옷’이었다.
대학교 때 잠깐 피팅모델을 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살려 스마트스토어에서 옷을 팔아보기로 했다.
이름을 정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통신판매업 신고까지 했다.
컨셉이 정해지자 곧장 동대문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기가 세다’는 말을 들은 터라 먼저 공부부터 했다.
‘깔’은 컬러, ‘장끼’는 영수증, ‘미송’은 제품 받기 전 구매.
탕, 나오시, 대봉, 소봉, 사입삼촌…. 처음 듣는 용어가 끝도 없었다.
첫 사입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낯선 사람에게 ‘언니, 이모, 삼촌’ 하고 너스레를 떨며, 온라인에서 찜해둔 옷들을 찾아다녔다.
외운 용어로 능숙한 척하며 매장을 돌았다.
매장마다 사장님들의 개성이 분명했다.
마음에 드는 곳은 따로 메모했고, 영수증을 모아 엑셀에 정리했다.
나름대로 1인 사장님 흉내였다.
물건은 샘플을 공짜로 받을 수 없어서 처음엔 직접 구매해야 했다.
컬러별·사이즈별로 한 번에 들여와야 했기에 초기비용은 피할 수 없었다.
집에서 촬영할 땐 조명이 중요했다.
조명, 가림막, 옷걸이, 행거까지 새로 샀다.
다행히 휴대폰 카메라가 좋아진 시기라 따로 카메라는 필요 없었다.
첫 주문.
어떻게 알고 찾아와 주셨을까?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작은 서비스라도 꼭 챙겼다.
감사의 쪽지와 머리끈 하나, 그리고 꼼꼼한 스팀 다림질과 실밥 제거.
급할 땐 세탁소에 맡겨 다려서 보내기도 했다.
‘이건 누구를 위한 장사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문은 조금씩 늘었다.
다만 이윤을 너무 적게 잡아 남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농담처럼 중얼거렸다.
“경영학과를 나올 걸….”
사입도 요령이 생겼다.
얼굴을 가리는 대신 깔끔하게 꾸미고 가면, 사장님들이 나와 어울리는 신상을 먼저 챙겨주셨다.
그 뒤로는 사입 비용이 훨씬 줄었다.
나는 아침 사입을 선호했다.
사장님들이 퇴근을 앞두고 기분이 좋을 때라 분위기도 나았고,
무엇보다 전날 밤 들어온 주문을 오전에 바로 찾아 배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만 보 넘게 걸으니 건강도 더 좋아졌다.
일이 익숙해지자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했다.
종로 주얼리 가게에서 다이아몬드 반지 손모델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했다.
사입을 마치고 주 3일, 하루 4시간만 일하면 됐다.
덕분에 사입은 주 3일로 줄이고, 급한 주문은 ‘사입삼촌’을 쓰기 시작했다.
주얼리 알바는 편했다.
손만 찍으면 됐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끝.
하루에 50쌍의 커플링을 촬영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다른 업무를 돕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 절반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작은 회사에 들어가면 ‘여긴 가족 회사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데,
실제로 그렇다는 걸 알면 괜히 뿌듯했다.
하지만 익숙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이 지나던 무렵, 코로나가 시작됐다.
나라가 멈췄고, 하늘길이 막혔고, 주문은 줄었다.
주얼리 가게도 힘들어졌고, 결국 나에게 퇴직금과 함께 퇴사를 권했다.
생각보다 길어진 코로나는 내 일상을 멈추게 했고,
나의 소중한 쇼핑몰도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교육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돌고 돌아, 예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 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