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점에서 이 영화를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묘한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 '요즘'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섬세하게 담겨 있었는데, 남편이 출근한 후, 적막한 집 안으로 들어가 햇볕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은 가슴 저리도록 공감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를 문학특기자로 입학했으니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본래 좋아하는 사람이다. 주인공 김지영에게 빠르게 이입되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쓰면 되지 않냐는 말을 나 또한 많이 들었다. 내가 문학특기자 전형 면접을 보았을 때,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였는데 당시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글'은 '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강물을 따라갑니다. 강물은 흘러 모두 하나 되어 만나는 바다에 도달하는데, 작가와 독자는 그 바다에서 만나 세상을 이야기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물이 고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육아도 어느 정도 근육이 생겨야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수 있는 것처럼, 육아와 글쓰기를 병행한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영화 속 남편 대현(공유)이 육아휴직을 쓰면서 책도 읽고, 공부를 하겠다는 말을 통해 흔히들 생각하는 ‘육아'에 대해서, ‘엄마의 하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지금도 나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너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이다. 엄마가 되면 엄마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일까. 특히나 눈물이 더 많이 흘렀던 대사였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주인공 김지영이 육아맘의 공감을 얻는 것은 이 시대 보편적인 엄마들이 배울 만큼 배웠고, 특기와 전공이 있어 능력도 있지만 육아를 병행하며 일을 실현하기가 어려운 현실이 있는 그대로 답답하게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결혼하게 전에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했다. 내가 입사할 무렵, 한 책상이 비어있었는데 그 책상은 육아휴직 중인 여성분의 것이었고,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다시 복직을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분은 사직서를 내셨다. 지금도 그분이 왜 사직서를 내셨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일과 연관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지울 수는 없다.
나도 결혼을 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파주까지의 출퇴근이 어려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는 그만두었지만 첫째를 낳고 나서도 외주로 작업을 받아 편집일을 이어갔다. 하지만 육아에 서툴던 그 시절에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잠을 쪼개고, 밥시간도 건너뛰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온전히 잘 돌보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잘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계속 일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육아가 익숙해지자 둘째를 낳고서도 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다시 한번 출판사 입사지원으로 이어졌다.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합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당시 면접관이 나에게 했던 질문 중 하나가 '업무 특성상 야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아이가 어려서 어떻게 극복하실 수 있나요?'였다. 나는 일을 다시 하고 싶어서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간 상태였고,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시겠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합격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미혼이었던 지원자에게 돌아갔다. 내가 면접관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떨어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나에게 했던 그 질문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면접관도 여자분이셨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김지영'이 상담을 받으며, 결국 '모두 제 탓이에요.'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안다. 나도 그 결론에 도달해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내가 잘나지 못한 이유로 이 모든 상황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해줘서 고마웠던 영화였다.
(영화 잘 봤습니다. 유미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