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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비아 Sep 06. 2019

우리는 모두 엄마가 있잖아요



 두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창 밖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나 당연하지만 번뜩 뜨이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나'임을 알아가고, 세상을 살아갈 때쯤,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통하는 명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 하나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밤에는 자야 하고,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도 나의 선택사항이 아닌데, 그 외의 남은 시간을 생각한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좁아 보인다. 나는 먼저의 것, 탄생과 관련된 부분에서 ‘부모’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걸 짚고 싶다.


 세 아이를 만나면서 몸소 느끼는 것은 아이는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천성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머문 곳만 같을 뿐, 성격이 달라도 이리 다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매번 처음 육아한다는 다짐으로 아이와 함께 공존한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세상에 무지하거나 어른보다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늘 인격체라고 대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대우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세상을 연결하는 사이클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나는 지금 ‘엄마'라는 이름과 역할만 빌렸을 뿐이고, 아이들은 나를 통해 세상을 만난 '사람'이자 앞으로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빠'가 될 사람들이다. 내가 아이들의 '엄마'가 된 이상,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누구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엄마'가 될지 여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좋은 엄마'는 '착한 엄마'라는 공식과 일맥상통하지 않는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추상적인 표현이고, 그 수식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의 내릴 수 있는 시점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방법을 찾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 '여정(旅程)'이다. 그 여정 안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과 실수, 뜻밖의 행운과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시간들이 모여 ‘내가 살아갈 길'이 될 것이다.


 어느 책에서,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가 엄마를 더 사랑한다.'는 구절을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크기는 어른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무한하고 순수해서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그 맹목적이고 눈부신 사랑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상엔 거칠고 험한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우리 마음속에 온기가 남아 있는 건 이 세상을 정화시킬 아이들이 있어서라고 나는 늘 믿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나를 품어준 엄마가 있고,
나를 품은 세상이 있고,
내가 품어줄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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