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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비아 Nov 08. 2019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




 오늘이 '입동'이라고 하니 완연한 가을을 떠날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서운하다. 며칠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신기하게도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붉고 노란 수채화 물감이 붓 끝에 살짝 닿아 번진 듯 바닥에 흐트러진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아직 출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다.


 37주가 되었다. 37주부터는 10개월로 보며 이제는 아기가 언제 나와도 괜찮은 정상분만으로 본다. 아직 출산 가방도 다 챙기지 않았는데 그동안 너무 늦장을 부렸나 보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외출도 힘들어질 테니 미뤄두었던 바깥일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이제는 오래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고 금방 피곤해진다. 잠시 쉴 겸 카페에 들어가 요즘 노래를 들으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자니 들리지 않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아이들의 하원 시간을 자꾸만 상기시킨다.

 






 첫째 아이를 낳고서 6개월 간은 정말 우울했다. 세상은 생기 없는 흑백 사진 같았고, 시간은 흘러도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 반복되는 일상이 마치 데자뷔 같은 하루였다. 출산 후 호르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지내온 생활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엄마라는 사람의 하루는 동굴로 들어간 것처럼 어둡기만 했다. 카페에 앉자 있으니 그때 생각이 났다. 친구가 SNS에 올린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사진을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커피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그 일상이 어떤 분위기인지 모든 감각이 돋아나 공기, 소리, 기분까지도 정확히 알겠어서 그걸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갑자기 슬픔으로 다가와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감사하게 여긴다.


 

 




 혼자 마시는 커피도 여럿이서 마시는 커피도 맛있으니 이제 아기가 언제 세상과 만날 준비를 마치고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나의 이 말이 기약 없는 약속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다음에 만나면 커피 한 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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