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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비아 Nov 10. 2019

지금은 홀로그램 hologram




 아이들을 재우러 갔다가도 내가 먼저 잠드는 경우가 많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꼭 한번 이상은 깨는데 눈을 떠보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뻑뻑해진 눈을 꿈뻑이며 몸을 옆으로 돌려 힘겹게 일으켰다. 귓구멍을 가만히 압박하는 고요한 소리, 텅 빈 벽을 가만히 내리쬐는 수면 조명이 큰 의미 없이 흘러간 어제의 마감을 알리는 것 같아 허무함이 밀려온다. 어제의 위안으로 오늘은 시작은 달랐으면 하는 바람에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얼굴을 때리는 쨍한 모니터 화면의 빛이 덜 가신 잠 기운을 흔들어 깨운다. 검색어 입력 -



출산 준비
출산 가방
출산 후기



 처음 출산도 아니고 가방도 어느 정도 챙겨두었지만 막상 예정일이 다가오니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출산 순간의 신호탄은 뱃속의 아기가 쥐고 있기 때문에 막달의 엄마는 온 감각을 집중해 기다림의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과 달리 아랫배의 묵직함이 느껴지고, 오후가 되면 배뭉침도 자주 찾아와서 요즘에는 배터리가 0%이지만 세 아이의 저녁 시간을 챙겨야 하므로 수동모드로 전환해 몸을 억지로 움직인다. 그럴 때면 한 번씩 스치는 생각이 있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 많은 아이를 낳고, 키우셨을까?"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 1세대만 거쳐도 그러했던 시대에.


 어제 잠들기 전에 첫째 딸이 옆에 누워 나에게 물어본다. "엄마. 우리 내일은 어디 갈까?", 나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일요일인데 우리 어디 가지? 너 가고 싶은 곳에 가자.".


 몸은 고개를 심하게 흔들며 아니라고 쉬고 싶다고 절절히 말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애써 모르는 척 내일은 또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한다. 그래도 넷째가 뱃속에 있을 때 라도, 출산하고 엄마가 고플 아이들을 생각하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하늘에 계신 어떤 분이 나를 만드실 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텨낼 수 있는 정신과 체력은 주지 않으셨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 있다. 엄마니까 해야 하는, 엄마니까 할 수 있는.


 나만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 힘든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때로는 나도 이 상황이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르겠다. 여러 가지 기분과 감정이 마치 혼합되어 겹쳐진 홀로그램같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기쁨과 슬픔이, 고마움과 미안함이 떼려야 뗄 수 없이 공존하는 것처럼.


 한 시간 정도 앉아 글을 쓴 것 같다. 나른한 피곤함이 다시 한번 찾아온다. 집 안 구석구석에 시선을 던져 보니 아직도 출산 전에 미리 해둬야 할 것들이 많이 보인다. 글쓰기를 마치고 오늘을 챙겨야 할 식구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딸이 일어나면 오늘은 어디에 가고 싶은지도 물어봐야겠다. 요 며칠 남편은 집에 들어올 때마다 왜 이리 멀리 떠날 사람처럼 집 정리를 하냐고 물어보던데,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마치 비장한 전투를 기다리고 있는 장군처럼.



오늘도 키워드는
'정리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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