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종종 이런 말들을 듣고 있다.
(여자가) 술마시고 밤늦게 다니면 안돼.
(여자가)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으니 위험해.
(남자가) 소심해서는 안돼.
(남자는) 울면 안 돼.
등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 앞머리에 종종 (여자가) 혹은 (남자가)라는 말을 넣는다.
우리가 자라는 내내 들어왔던 말이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가) 혹은 (남자가) 라는 단어 대신 (사람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여자가) 술마시고 밤늦게 다니면 안돼. // (사람이) 술마시고 밤늦게 다니면 안돼.
(여자가)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위험해. // (사람이)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위험해.
(남자가) 소심해서는 안돼. // (사람이) 소심해서는 안돼.
(남자는) 울면 안 돼. // (사람은) 울면 안 돼.
(여자가) 혹은 (남자가) 대신 (사람이)라는 말을 넣었을 때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은 성차별적인 문장이다.
이렇게 간편하게 알 수 있고, 또 잘못된 것이 확실하게 느껴지는데도 쉽게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며 그 잣대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이고,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 말들이 맞는 말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차별적인 사회라는 증거다.
우리는 여전히 성별에 따라 성격과 행동에 잣대를 두고,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는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 속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태도, 예능 속 자막이나 패널들의 말들, 뉴스 기사 속 성차별적인 제목이나 문장들, 노래 가사 등 늘상 접하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성역할 고정관념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뿌리깊숙이 박혀 돌고 도는 성역할 고정관념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성역할 고정관념을 주입시키고 고착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매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것은 스웨덴의 성 중립 화장실 표지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혹은 그 이외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성별,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그냥 사람이 사용하는 화장실인 것이다.
이처럼 그냥 여자 혹은 남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볼 수는 없을까.
사람이기에 소심할 수 있고, 힘들면 울 수도 있다.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을 수도 있고, 일하느라 혹은 노느라 늦은 밤시간에도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다. 힘이 쎈 사람이 있고, 힘이 약한 사람이 있으며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마다 다양한 특성들이고, 사람이기에 아무런 문제없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우리는 여자이기에 혹은 남자이기에 어때야 할 필요가 없는 그냥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