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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03. 2020

공포의 택배 알바

이제 곧 설날... 갑과 을이 뒤엉킨 한바탕 삶의 현장


이제 곧 설날이다. 가족끼리, 또 연인이나 친구, 지인을 향해 마음을 담은 선물이 오고갈 것이다. 택배를 통해서다.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택배 상하차 알바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날 집어 삼킬듯 다가오던 그 박스들의 돌진이 머릿속을 맴돈다. 내 마음을 이어주는 알바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허리를 숙이고 낑낑대며 박스를 쌓는 그들이 있기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사건팀 회의에서 도저히 발제할 게 없던 날이었다. 추석을 앞둔 때였는데 팀장의 추궁이 이어지자 택배 생각이 났다. 아이디어가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자'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통해 택배 상하차 알바 번호를 받고(아마 대행하는 사무소였던 듯) 예약을 해뒀다. 전날 목욕재계를 하고 일찍 잠이 들려고 했는데 걱정이 되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알바비 보다 허리 치료비가 더 나왔다" "아무나 덤비지 마라. 노동의 끝을 볼거다.." 등등의 워딩이 많았다. 슬슬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오후 6시쯤 지하철 7호선 상봉역 근처 인력개발 사무소로 갔다. 남성 12명이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그중에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이도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부터 뿔테 안경을 낀 청년까지 구성도 다양했다.



10여분후 나를 포함한 지원자들은 사무실 앞에 서 있던 버스에 올랐다. 1시간여를 달리는데 정말 시골같은 곳으로 갔다. 숲과 밭밖에 안보이는 풍경을 뚫고 경기도의 한 택배회사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내려서 주위를 살펴보니 10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버스가 도착해 20∼30명씩 ‘알바’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아마 서울 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 다 오는 듯 했다. 오후 8시쯤 되자 400명 넘게 모여 물류센터가 북적였다. 나처럼 혼자온 사람들은 멍하니 서있고, 그룹으로 온 젊은이들도 보였다. 여성들도 상당수 있었다.

    

오후 8시가 됐다. "다들 모이세요"라는 외침이 울렸다.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것 같은 감독관은 사람들을 세가지 포지션에 지정했다. 명절 택배 물류 알바는 크게 세 가지 작업으로 나뉜다. 물류센터에 접수된 택배 화물을 트럭에서 내리는 ‘하차’, 이를 배달 지역별로 나누는 ‘분류’, 다시 각 지역으로 갈 트럭에 싣는 ‘상차’. 이 세 작업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화물을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다.


감독관이 내 얼굴을 보더니 나를 상차 작업에 배치했다. 경기도 안성행 ‘상차’ 라인이었다. 빈 트럭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주루룩 컨테이너 벨터를 따라 정렬했다. 첫 물품은 쌀이었다. 20㎏ 쌀 포대 8개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화물이 들어오면 일단 트럭 주위에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낑낑대며 5포대쯤 옮겼을 때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도자기 세트가 들어왔다. 그 뒤로 타이어도 보였다. 순식간에 물량이 밀렸다.



‘분류’ 라인의 관리자와 인부가 동시에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빨리 안 해. 들어오면 바로 옆으로 치워.” 작업 10분 만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포도 복숭아 등 과일부터 살아 있는 물고기, 장난감, 난(蘭)까지 다양한 화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보통 트럭 하나에 짐을 다 싣는 데 40분쯤 걸린다. 2명이 화물을 밀고 옮기면 다른 2명이 트럭에 쌓는다. 이 작업을 6번 반복하자 팔이 떨어질 듯 아팠다. 트럭 하나를 채워 보내면 곧바로 대기하던 빈 트럭이 자리를 채웠다. 말 그대로 쉴틈이 없었다. 밀려드는 차량을 보며 한숨쉬고 있는데 옆에 있던 왜 아저씨가 소리쳤다. "그냥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져”라고 했다. 선선한 날씨였는데도 너무 더웠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찜통 같은 물류센터 안에서 능숙한 아저씨들은 아예 웃통을 벗고 일했다.


무거운 물건부터 트럭안에 쌓아야 안 무너진다. 들어오는 물품을 재빨리 보고 판단해서 맨 안쪽부터 채워야 한다. 한번이라도 박스탑이 무너지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택배 알바 작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인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7시간 동안은 휴식 시간이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시간 없으니 대충 트럭 옆에서 해결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남자들은 트럭 근처에서 소변을 봤다. 찌릿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트럭 옆에 정수기가 있었지만 역시 ‘시간이 없어’ 물을 마시지 못했다. 5시간쯤 지나자 물류회사에서 제공한 빵과 음료를 교대로 먹기 시작했다. 5분이 걸렸다. 누군가 10여분 자리를 비우자 “그럴 거면 집에 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타가 쏟아져 작업장 분위기는 한순간 사나워졌다.  


다음날 새벽 오전 3시. 전반부 작업이 끝나니 늦은 저녁식사가 나왔다. 일당에서 5000원이 공제되는 식사다. 다리가 풀리고 정신이 멍해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집에 가버리는 것이다. 1시간 휴식이 끝나고 다시 작업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격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택배 알바는 통상 오전 7시30분쯤 작업이 끝난다. 그러나 화물이 남아 있으면 일은 계속 이어진다. 모든 물량이 트럭에 실릴 때가 ‘작업종료’ 시점이다. 이렇게 해서 받는 일당은 10만원선이다. 군대에서 작업할 때보다 훨씬 더 고된 하루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7시30분까지 버티지 못했다. 새벽 4시쯤 몰래 도망쳤다. 첩보 영화처럼 풀숲사이에 숨었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30분간을 뛰다 걷다 하니까 편의점이 나왔다. 포카리스웨트 1.5L 짜리를 원샷했다. 서러움이 몰려왔다. 이후 연차를 내고 하루 쉬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사를 써서 넘기니 데스크가 "총 얼마 받았느냐"고 해서 "11만원을 준다고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데스크가 "돈 안받았어"라고 물어서 "중간에 도망쳤다"고 하니 서로 웃었다. "몇시간 일한거 아깝지 않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도망친 것은 내생애 가장 잘한 일"이라고 응수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담으로 기사를 쓰려면 현장 사진을 찍어야 했다. 다만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감독관이 "야 너 그거 안집어넣어?"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정말 심장이 쫄깃해질 정도로 눈치를 보며 소리안나는 카메라로 딱 2장을 찍었다. 인부들의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사진이 나갔는데 기사를 보고 메일이 왔다. 작년에 집 나간 동생과 체격과 생김새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도 몰래찍은거라 도와드리진 못했지만 과연 어떤 사연일까.. 하고 생각했다.





택배 알바 현장에서 많은 이를 봤다. 정말 말랐는데 지치지도 않고 쌀 포대를 옮기는 어르신이 있었다. 처음보는 알바에게 소리치고, 욕지거리를 하는 감독관도 봤다. 명절 시즌이 되면 물류회사는 일감이 많아 알바에게 돈을 더 준다. 배송이 늦어지면 소비자는 전화로 컴플레인을 넣는다. 소비자->상품회사->물류회사->감독관->알바를 거치며 흘러내리는 갑을 관계는 트럭 옆에 떨어진 오줌방울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알바 모두가 비인권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시를 따르거나,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를 하더라도 다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게 택배 상하차 알바다. 대학생들은 여행 비용 마련이나 이성친구 선물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물류회사를 옮겨다니며 알바를 하고 있다는 한 중년 아저씨는 과잉 선물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명절 선물에는 따뜻한 정이 아니라 부담이 담겨있다는 거였다. 작업 내내 혼잣말로 욕을 하던 그는 돌덩이 같은 난을 내던지며 "도대체 이런 물건은 왜 보내는 거야"라고 해서 나도 슬며시 웃었다.


누구는 온몸을 내던지며 택배를 실어서 받은 10여만원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택배를 보낼 것이다. 누구는 또 온몸을 내던져 나의 택배를 트럭에 싣고, 내리고, 분류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반 인권적 노동환경에 몸을 맡기는 이들의 사연은 깊고, 공고하다. 택배가 돌고 돌듯 우리 인생도 돌고 돈다. 설날을 목전에 둔 지금도 경기도 어느 곳에선 이런 노동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선물을 옮기는 알바생의 팔과 다리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길 기도한다. 덧붙여 아무리 일이 바쁘고 해도 알바를 함부로 대하는 고용인의 행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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