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2법칙 : 해답은 본인이 알고 있다

선택의 기준은 바로 '재미'

by 애들 빙자 여행러

다시 나의 20대인 사회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당시 짝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예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 자꾸 구토를 했고 살이 계속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드라마처럼 급성 백혈병에 걸려 입원을 했고 나는 언제쯤 문병을 갈지 웃으면서 통화를 하기도 했지만 입원을 한지 채 2주도 안되어 하늘나라로 갔다. 당시 나름 처음 겪어보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그녀의 수첩에 나의 연락처가 적혀있지 않았다면 그 작은 수첩을 그녀의 친구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날 나의 삐삐 메시지에 그녀 친구의 음성이 남겨져 있었다. 그녀 죽음을 알리며 그녀의 친구는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절친을 알고 있었다. 물론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제일 많이 언급하던 친구라 생각된다. 그녀의 친구도 나를 알고 있었을까.


그녀의 장례식장을 찾아갔을 때 그녀의 영정사진을 봤다. 나에겐 사진 한 장 남겨지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웃고 있었다. 현실에도 인터넷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존재가 됐다. 다음날 벽제 화장터까지 따라갔다. 그녀의 하얀 잿가루는 화장장에 위치한 ‘유택동산’이란 언덕에 뿌려졌다. 그 후 나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그녀의 기일인 1월이 되면 매년 그곳에 가곤 했다. 1월이라 언제나 추웠고 날씨가 매서워지면 그녀 생각이 나곤 했다.


참 이상했는데 그 언덕에 멍하니 홀로 서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가 가능했다. 그곳도 이제 여러 번 리모델링을 거치며 많이 변했지만 주변 나무에 앉아 있던 새소리 등은 변함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응 오랜만이야. 하늘에서 날 계속 지켜본 거 아니야? 다 알 거 아니야”
“하하. 나도 여기서 바빠. 여기서 만나는 고마운 사람도 많고 이렇게 새들이랑 꽃들과도 대화해야 하고”
“바쁘구나. 이제 우리도 서로를 서서히 기억 못 하게 되겠지?”
“오늘 왜 이래, 다시 센치해졌네, 무슨 일 있어?”


그때는 항상 뭔가 가슴이 답답했던 것도 같다. 뭔가 약해 보이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언제나 중요한 선택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또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차마 말을 못 했지만 나의 마음속에 한가득 있던 커다란 고민의 덩어리를 눈치챘을지도.


“뭘 그렇게 고민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겠구먼. 재미있어? 재밌을 것 같아? 그럼 된 거잖아!”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해답을 준 것 같다. 그곳에 있으면 그녀 특유의 억양과 말투가 느껴졌다. 그녀는 언제나 쿨했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재미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그 ‘재미’에 대해 떠올리곤 하였다. 마음속에 한가득 갖고 간 큰 바위 같은 고민은 그 ‘재미’라는 관념에 산산조각이 났다. 모든 문제는 재미있냐 없냐로만 생각하면 됐다. 실제로 그녀가 하늘나라에서 대답을 해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그곳에 하염없이 서있으면 대화가 가능했다. 그녀의 대답이었는지 아니면 잊혔던 나의 가슴속에 가라앉었던 나의 해답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제 자주 오지는 못 할 것 같아.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고 곧 아이가 태어날 것도 같아. 예전처럼 당신을 생각하지는 못 할 것 같은데 이해해 줄 수 있지? 각자 자리에서 생활하다가 우린 곧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겠지. 그때까지 잘 지내”

keyword
이전 02화제1법칙 : 신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