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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것보다 바쁜 편이 낫다

세뇌의 기술 네 번째 이야기

by 애들 빙자 여행러

때는 바야흐로 대학 4학년. 다시 대학생으로 타임슬립을 해보자.


일반적으로 대학 4학년의 학교생활은 조금 무료할 수 있다. 대부분은 취업 준비로 여념이 없을 테지만 우리 학교의 특성상 대부분은 대학원 입시 준비로 한창이다. 졸업 학점은 대부분 3학년까지 따두고 4학년은 학점도 최소한으로 신청했던 것 같다. 나도 남들 따라 대학원 입학서류를 냈던 것 같은데 그 떨어지기 어렵다는 서류전형에서 어처구니없이 미끄러진 것이다. 나는 솔직히 학업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수업도 거의 없는 데다가 대학원 입시도 더 이상할 필요는 없으니 별달리 할 일은 없었다. 기숙사와 도서관을 어슬렁 거리기도 했고 그때 담배라는 것도 피우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시에는 건물 내에서도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중앙도서관 1층 신문철을 한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자판기 커피 하나에 담배를 물고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기숙사방에 커다란 유리로 된 오렌지주스병에 수북하게 담배꽁초를 담아두기도 했다. 룸메이트는 우리 과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였는데 유학 준비를 했다. 거의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일찍 나가서 늦게 잠잘 때쯤에만 들어왔다. 방에서도 계속 담배를 피웠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냄새를 어찌 감당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기숙사는 2인 1실이었고 마음에 맞는 상대를 정해 신청하면 룸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 원래 3학년까지 친한 다른 동기랑 같이 살았지만 4학년 입시 준비를 핑계로 이별을 했다. 정말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 우리 과에서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았던 동기에게 먼저 룸메이트 제안을 했는데 그 친구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주 성실하고 착실한 친구였다. 지금은 어느 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다.


기숙사는 4층 꼭대기였다. 아는 사람은 아는 꼭대기층은 특히나 여름엔 쥐약이었다. 바로 뜨거운 태양에 직접적으로 맞닿은 지붕의 열기가 그대로 천장으로 전달되고 있는 듯했다. 당시 기숙사엔 별다른 냉방 장치는 없었다. 그저 작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고 있었다. 뜨거운 낮에는 도서관으로 피신했던 것 같은데 가장 뜨거운 한 낮이 지나 오후가 찾아오면 설렁설렁 기숙사로 들어갔다. 땀이 날 때마다 시원하게 샤워장에서 하루에 몇 번이건 샤워를 하기도 했고 아직은 뜨거운 열기가 있는 방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던 것 같다. 무료하면 무료할수록 잠은 왜 그리 잘 오는지. 방에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


“신이시여 무료함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이 무료함이 바쁨으로 바꿔진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을 탈출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습니다.”


4학년부터 나름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학생과외도 모두 그만두었다. 학비가 없는 학교생활에선 과외 아르바이트가 나름 나의 생활비였는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이 마저도 모두 끝냈다. 아마도 연말까지의 생활비까지는 확보했을 것이다. 찬바람이 슬슬 부는 가을쯤 됐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군대를 가거나 취업 그리고 5학년으로 졸업을 1년 미룰까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과사무실에 다양한 취업 및 직원모집 공고가 몇 개 올라왔다. 대부분 대기업 정보였는데 한 곳이 벤처기업 공고였다. 그리고 이 업체는 병역특례업체로 약 3년을 근무하면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직장의 분위기는 - 우리 회사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 야근을 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회 초년병인 당시에는 칼퇴근이란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어쩌면 집에 바로 가봤자 할 일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항상 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친구들 모임만 생각해도 30살 정도까지 - 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벤처기업체 취업했기에 당시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 약속시간에 한꺼번에 모인 적은 없었다. 아마도 과장급이 되기 전까지 친구나 동기들은 항상 야근이 일상이었다.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일이 뭐라고 그날도 밤을 새워서 일을 하였고 코피까지 터 진 날이었다. 거기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까지 받았었다. 나는 주말에 고속도로를 운전까지 해서 시골 장례식장까지 가야만 했는데 운전을 하면서도 깜박 깜빡 졸았던 것 같다. 차가 너무 막혀 중간중간 휴게실에 자주 서서 쉬엄쉬엄 운전하고 있었다. 그럴 때 대학 4학년때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때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는 무료하여 더운 방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기 싫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것보다 비록 코피가 나더라도 정신없는 삶이 오히려 낫다. 그 후 나는 아무리 회사 일이 바쁘고 엄청나더라도 악마에게 영혼을 제대로 팔았던 그때를 떠올리곤 했다. 난 결코 지치지 않았다.


“악마여 내가 그때를 후회하고 있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나는 그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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