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기술 여섯 번째 이야기
1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를 경기도 벽제의 한 추모공원에 모셨었다. 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즐긴다. 서울을 벗어나 점차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고즈넉해지고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그곳에 가면 자동차의 유리문을 내리고 깊게 심호흡을 한다. 자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엔 로컬푸드 전문판매점이 있는데 근처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작물들을 저렴하게 직거래할 수 있는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도 이곳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납골을 모실 곳도 고민 없이 이곳으로 결정했다. 근방에는 다양한 납골당이자 추모공원이 있어 선택의 폭이 컸다. 나는 아버지의 유골함 위치를 바로 정면에 큰 소나무가 보이는 곳으로 선택했다. 아버지 동료-주변 납골-들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영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아버지로 옮겨가게 되었다. 사실 이런 추모공원의 위치는 집에서 가깝다고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멀다고 많이 못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마음 가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모셨기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이곳은 집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차가 막히면 2배 정도는 걸릴 수도 있기에 나는 언제나 주말 아침 일찍 가곤 했다. 물론 추모공원은 공식적으로 오전 9시에 문을 열지만 8시가 좀 넘으면 문을 개방했다. 거기서 아버지를 만나고 9시에 문을 여는 - 이곳도 8시 반이 넘으면 문을 개방한다 - 로컬푸드 마켓에서 값싸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사가는 건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방문은 꽤 자주 가게 되었다. 또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 자동차 안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 젊었을 때의 인기 가요를 가장 크게 틀고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운전을 한다. 댄스음악부터 여성보컬의 고음처리까지 장르는 변화무쌍하다. 뻥 뚫린 도로를 달리고 - 과속하지 않습니다 -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하다 보면 어느새 아버지가 계신 곳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날 때면 이미 난 진이 빠져있었다.
내가 어떤 고민과 마음속에 짐을 가지고 왔는지 까먹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내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치지 말라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의 유골함 앞에 하염없이 서있다 보면 다시 그와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어쩐 일이냐. 애들은 잘 있지?”
“그럼요. 아버지는요?”
“나야 잘 지내지. 바로 옆에 새로 친구가 들어왔어. 매일 그 양반이란 대화가 그치지 않아. 그리고 저쪽 대각선 저 양반도 죽이 잘 맞아. 생전에 술 좋아하던 친구들이라. 여기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거워. 날씨도 언제나 화창하고”
“잘 지내시다니 다행이네요. 좋아 보여요. 걱정 안 할게요”
“왜, 너 무슨 일 있어? 왜 마음이 안 좋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야 언제나 당신의 아들이지요”
일부러 얘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이곳에 오자마자 모든 게 사라진 느낌이었다.
뭔가 큰 깨닭음을 찾기 위해 왔는데 도착도 하기 전에 해답이 툭 튀어나왔다. 도망치지 말라고. 해답이란 것도 의외로 시시했다. 이곳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오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내가 고민하던 그것은 음악과 자연의 내음에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나는 그렇게 다시 가벼워져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곳에 오고 가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겐 치유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다시 자동차의 음악을 크게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