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마지막 선택의 순간
건축허가가 났다고 바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협의문서 가이드에 따라 건축사가 착공 신고를 내야 한다. 나름 낼 돈은 다 냈다고 생각했는데 각종 면허세를 또 내야 했고 국민채권이란 것도 구매해야 했다. 전체 비용에 비하면 큰 비용은 아니긴 했다. 이건 온라인으로 납입이 불가하고 해당 면사무소 또는 제주시청에 직접 내야 해서 당일치기 제주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 카드 납입은 불가하고 현금만 가능했는데 신용카드만 가져가서 무척 당황했었다. 시청 근처에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어이가 없어 낙담을 하고 있다가 편의점 현금기기에서 카카오페이앱을 통해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착공신고는 납입 영수증과 함께 어느 업체랑 공사를 할지를 정하는 등 착공계획을 작성하여 착공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이제 가장 중요한 누구와 공사를 하느냐가 남았다.
설계 대표님은 공사 중에 각종 사고나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니 책임감 있고 튼실한 종합건설 면허가 있는 업체에 시공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예전에 제주에서 공사를 했을 때 단 한 번도 사건사고 없이 만족스럽게 진행했던 현장이 없다고도 했다. 기존 내가 논의 중이었던 시공사는 종합건설사 면허가 없었다. 건축은 크게 직영공사와 종합건설사 발주공사로 나뉠 수 있겠다. 보통 제주 주택은 200제곱미터 이상 공사에서는 종합건설사 공사가 필수지만 그 이하에서는 직영공사– 건축주가 책임을 지고 시공사에게 위탁 -가 보통인 듯싶었다. 와랑마을의 앞선 두 집도 모두 직영공사였지만 큰 사건은 없긴 했다. 건축주가 주도적으로 현장 소장도 계약하고 각 단계별 업체에 연락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나도 당연히 직영공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은 반대셨다.
“직영공사는 리스크가 커. 현장에서 사건사고가 나면 건축주가 책임져야 하고 시공사가 나중에 문제를 일으켜도 스스로 해결해야 해. 반면 종합건설사는 최종 완공된 건축물을 납품받는 형태로 관리비용이 좀 더 들지만 가장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린 제주 현장에 자주 갈 수 없으니 직영은 더욱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 종합건설사를 통해 안정적으로 공사를 진행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문제는 추가적인 비용인 것이다. 앞선 제주 시공사 사장님은 30여 평 작은 공사에 종합건설사가 참여하기에는 무리스러울 것 같다고 말씀 주셨다. 각종 보험료 및 관리비 등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드는데 비용이 더 드는 것도 문제지만 과연 큰 업체가 작은 건축 공사에 참여할지 모르겠다고 말씀 주셨다. 사장님은 종합건설사 입찰참여가 필수라면 참여가 어려울 것이라 하셨다. 지금까지 많이 도와주셨는데 죄송했다. 나도 굳이 내 예산안에서 종합건설사가 참여한다면 땡큐인 상황이지만 그만큼 공사비 부담은 더 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합건설사 자격을 가진 업체만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우선협상권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실제 공사에 쓰일 실시설계 등 보다 세밀한 설계를 준비하고 보다 명확한 공사비 산정을 위해 모든 내외장재 및 각종 소모품 등 크기와 규격을 정하는 스펙북을 작성하기로 했다. 스펙북까지 계약서에 첨부됨으로 협의 없이 시공사 임으로 재료를 교체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스펙북 작성에는 아내가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제주에 공간을 갖고 싶은 로망이 있을 뿐 그 공간이 목조이든 콘크리트 건 큰 상관없었다. 외벽이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어떠하리. 내부가 우드이든 회색이든 다 좋았다. 물론 전체적인 디자인에 이은 느낌이 스튜디오 개념이라 목재의 따뜻함보다는 갤러리 같은 안정적이고 깔끔한 느낌이길 바랐다. 아내도 어느 정도는 동의했는데 두 사람의 취향이 한데 섞여 난해해 지기보다는 아내에게 특히 내부 인테리어는 일임하도록 했다.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아내는 지난 세월 각종 재료의 장단점 및 특징 등을 스터디하고 있었고 뚜렷한 취향 그리고 무엇보다 안목이 있었다. 인스타나 핀터레스트 등 다양한 이미지를 찾아왔었고 전등 하나하나, 손잡이 하나하나, 수전 하나하나 나름 개성적이고 특색 있는 제품들을 찾아 리스트업 하고 있었다. 이를 그대로 스펙북에 반영했다. 일단은 로망을 실현해 보기로 하고 향후 공사비 규모를 보면서 하나씩 수준을 낮춰보기로 했다.
최종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두 곳이었다. 한 업체는 제주를 기반으로 한 건설사로 H대 건축대학원 출신으로 검도 네트워크에서 추천을 받았다. 다른 업체는 서울 업체인데 제주에서 단독주택 등 현재 지속적으로 시공을 하고 있는 전국적 업체라고 했다. 이 또한 검도 네트워크를 통해 소개받았다. 다른 업체도 몇몇 곳 추천받았는데 검증이 쉽지 않아 일단 두 업체로 제안했다. 대표님은 제대로 입찰을 해야 한다며 RFP(제안요청서)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각종 공사증명서 등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요청하겠다고 하셨다. 요즘 건설경기가 좋진 않지만 작은 주택공사에 종합건설사가 경쟁적으로 들어오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입찰은 실시도면과 스펙북을 참고하여 세부적인 견적서까지 제출하는 것으로 입찰공고가 나가고 약 2주간 후 우선협상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제안요청이 자세했기에 명확하게 견적을 낼 수 있었고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었다. 업체가 어떤 견적을 줄지는 정말 예측하기 힘들었다.
6월 건축허가 후 10월쯤에는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시간은 11월에 이르고 있었다. 입찰에 참여한 두 업체에서 최종 견적을 보내왔다. 건축사무소 쪽에서 견적서를 바로 보내주셨다. 두 업체의 견적서 파일을 여는 순간 난 숨이 턱 막혔다. 한 업체는 내 예상 금액의 2배, 다른 업체는 그 업체보다 1억 원 정도가 적은 금액. 두 곳 모두 내 예상을 엄청나게 넘겨서 보내왔다. 우울해졌다.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걸까?”
대표님은 바로 연락이 와서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첫 번째 견적이고 충분히 검토해서 비용을 줄 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전반적으로 재료비나 인건비 부분에서는 양사가 큰 차이는 없었다. 해당 1억 차이는 간접비에서 대부분 차이가 났다. 어쩌면 세부 견적에서 얼마나 도면을 보고 고민을 했는지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억이 적은 업체는 매우 자세하고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역으로 제안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간접비는 사실 네고가 가능한 부분이기에 처음에 높게 지르고 나중에 낮춰주려는 전략으로 보였다. 그 사실이 더 열받기까지 했다. 우리는 고민이 더 많아 보이고 금액도 1억이 더 적은 업체를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나는 그럼에도 최소 1억 이상을 네고를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이상 네고가 가능하다면 견적 자체가 엉망이었던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나는 망연자실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또 멈춰야 하는가도 생각했던 것 같다. 곧 대표님쪽에서 말씀을 주셨다.
“전체적인 견적은 특별하게 과하게 책정한 비용은 없는 것 같아. 1차적으로 재료 부분을 조정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면적을 줄이는 등 설계를 바꿔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전체 콘셉트를 유지하는 선에서 최대한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마지막 네고는 간접비에서 한 번 조정을 요청해 봐야 할 듯해”
해당 견적에서 돌담 쌓기와 에어컨을 빼니 3천만 원 정도가 줄어들었다. 재료비와 인건비에서 간접비까지 빠지니 줄어드는 폭이 컸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직접 계약을 맺으면 비용을 더 줄 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시스템 창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창호는 시공사가 최고의 브랜드를 제안했기에 모두가 바꾸지 말자고 했다. 그다음으로 외부 마감을 변경했다. 비용의 한계로 나름 ‘STO’라는 독일제 외부 마감을 선택했는데 이를 일반적인 ‘스타코’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최소 1천만 원 이상이 줄어들었다. STO는 서울에서 전문 시공인력이 내려와서 작업해야 하는데 전체 콘셉트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외부 바닥 데크 등을 이태리제 타일로 선정했는데 검토결과 시멘트 플러싱으로 효과를 내도 오히려 더 깔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니 얼추 1억 가까이가 낮아지고 있었다. 점점 처음 생각했던 재료가 많이 바뀌고 있었지만 무리 없는 선에서 정리 중이었고 그럼에도 설계자체를 바꿀 공간 규모까지는 손대고 싶지 않았다. 나름 최적의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추 1억을 낮추었지만 재료를 다운그레이드한 것이 50%, 나머지 가구 등 직접 계약할 것이 50%였기에 시공사 계약은 1억이 낮아졌지만 내가 추가로 확보해야 할 비용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여기저기 이미 생각했던 공사비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추가 비용은 어찌할지 난감했다. 다시 나의 방황이 시작됐다. 방황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음번 시공사 미팅 전까지 나의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기도 벽제에 있는 추모공원에 모셨다. 그때 받은 보험금 등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합쳐서 제주땅 구입 자금을 마련했었다. 그러기에 아버지도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가끔 아버지를 보러 가는데 이날도 그랬다. 그리고 물어봤던 것 같다. 내가 행복해도 될는지.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물론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가슴속에 따뜻해짐을 느꼈다.
자문자답일지도 모르겠지만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라는 것. 그 고통이란 것이 조만간 행복감으로 바뀌기를 바라기로 했다. 그리고 난 아내에게 건축비의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추가적인 비용을 요청했다. 특히 이 비용은 건축비라기보다는 건축 후에 소요되는 가구, 조경 등 시공사에 지급하지 않는 별도 비용이었다. 대출을 싫어했던 아내는 최종적으로 해당 금액을 자신이 부담하기로 약속했다. 나머지 금액은 미래를 위해 남겨두었던 미국 배당주 관련 ETF 등을 팔고 향후 6개월간의 월급 등 빠듯하게 모으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시공사와의 최종 담판에서 큰 가격 네고 없이 진행 합의를 하였다. 어떤 식으로든 시공사 대표와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했는데 마침 대표님의 고향과 나의 중고등학교 졸업 지역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시어 한 다리 건너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표님은 견적을 아주 타이트하게 내어 네고의 폭이 크지 않았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약간은 조정해 주셨다. 대표님도 제주에 세컨드하우스를 갖고 계시고 제주를 좋아하시는 분이었기에 정말 좋은 작품을 한 번 만들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시공 계약서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기본 표준계약서를 체결하기로 했다. 1주일 후에 계약 날인하기로 하고 나는 열심히 계약서를 읽어 보았다. 표준계약서라 검증되기도 했고 부족한 부분은 특약을 넣기로 했다. 폭풍 검색으로 보다 엄격한 계약서도 존재하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매일매일 현장을 체크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면 이 정도 계약서로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설계 대표님도 아무리 계약서를 잘 쓰더라도 막무가내 시공사를 만나면 이길 수는 없다고 중요한 것은 실력 있는 시공사를 선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계약 후에는 시공사와 건축주의 갑을 관계가 바뀐다는 얘기가 있는데 나는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