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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공사비는 오히려 줄었다

바람이 머무는 공간

by 애들 빙자 여행러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수록 현장과의 소통이 많아졌다.


세부 디테일한 마감공사가 많아짐에 따라 협의사항도 많았다. 현장에 자주 갈 수 없고 현장에 있더라도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체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도면을 세밀하게 그린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어 보였다. 설계 쪽에선 당연하게 생각하여 생략하거나 건축주와는 충분히 상의했던 요소들이 현장에서 100% 알기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알아서 더 잘해 주신 부분도 많았으나 정의되지 않았던 아니 정의됐더라도 물리적 한계로 진행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그 물리적 한계라는 것도 사실 상대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과연 누가 리스크를 부담할지의 문제였다. 현장에선 이런 문제로 자주 건축주인 나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는데 나는 기술적 지식이 부족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색깔을 정하거나 높이를 정하는 정도였고 이외의 것은 모두 설계를 담당하신 대표님께 결정을 넘겼다. 대표님은 언제나 원칙론자였기에 현장은 어떤 식으로든 설계도를 기반으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약간의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다. 시공사 쪽에선 마지막 계약일정에 맞추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공사가 조금 늦어져도 상관은 없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장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고 정확하게 6개월 만에 사용승인 준비에 들어갔다. 기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미흡한 부분이 나타났다. 시공 쪽에서는 우선 사용승인 신청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겠다고 했다. 예들 들면 주차장 라인을 칠하는 부분이나 도로명주소 신청한 후 팻말을 부착하는 것 같은 자잘한 이슈들이 남아있었는데 우선 신청하기로 했다. 미리 신청을 했기에 서류상 미비점은 담당공무원들이 바로바로 연락을 주셨다. 그리고 각종 사진 이미지도 추가 요청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담당공무원이 현장에 나왔고 승인주체인 시공사 측에서 현장 대응을 했는데 다행히 별문제 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공사가 끝났다고 모든 것이 종료되는 건 아니었다. 사용승인이 나와야 비로소 건물에 들어와 생활할 수 있었다. 이후 건물대장을 발급받고 취득세도 내고 실제 등기소에 등기도 해야 한다. 등기도 셀프로 했는데 필요한 서류만 준비해 가니 실제 걸리는 시간은 채 10분도 안 됐던 것 같다. 주변 정리도 필수다. 우리 공사로 이웃이 불편했을 것이다. 공사를 마칠 때쯤 옆집과 저녁을 함께 했는데 실제로 불편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정말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민원 사항이 적잖이 발생했을 것 같았다.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나 도로 파손 등 몇 가지 피해에 대해 원상복구에 해당하는 보상도 필요했다.

와랑 스튜디오의 전경

몇 가지 미비점도 발생했다. 수도요금을 체크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요금이 나왔다. 우리가 잠깐 사용한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 컸다. 어딘가 누수가 발생했다고 생각되어 여기저기 측량을 해보니 보일러실 밑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며칠 사용하지도 않았던 가스비가 많이 나와서 살펴보니 보일러에도 이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다행히 최종 잔금을 처리하기 전이라 이런 부분을 모두 최종 잔금 전에 수리 및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장마가 시작됐고 물 빠짐 등 사용상의 문제점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어쩌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최종 공사비는 계약서상에서 변동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좀 더 낮아지기도 했다.


실제 공사를 하면서 줄어든 비용이나 합의하에 설치하지 못 한 비품들은 전체 금액에서 제외해 주었다. 물론 계약 범위에 포함이 안 됐던 부분- 이를테면 성토를 추가로 진행 - 등은 합리적 비용으로 추가가 되기도 했지만 전체 공사비에선 미미했다. 역시 설계와 계약서에 입각하여 진행하여 추가적인 이슈가 없었던 것이 작용한 듯싶다. 시공사 측에서도 남는 것이 하나 없다고 울상이었다.


바람이 머무는 공간


건물에 입소한 첫날을 잊지 못한다. 아직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공간에서 야외 조명을 켜고 밝은 달빛을 바라본 것 같다.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밖에는 각종 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어 창호를 활짝 열 수는 없었다. 생각만큼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10년간의 여정이 마무리된 것에 대한 허탈함이었을까. 그래도 남쪽으로 길게 난 창호를 통해 바라본 와이드 한 뷰는 내가 꿈꾸던 그 상상 이상이었다. 그냥 멍하니 바람을 맞으며 밖에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바람이 머무는 공간. 이제 제주에 나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저녁 와일드한 앞마당 풍경.

다음 날 아침엔 일찍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새집 냄새가 나 길게 잠을 잘 수 없었다. 6월인데도 시골의 아침은 으스스했다. 제주의 습한 기온과도 관련이 있겠다. 낮에 해가 뜨면서 기온은 서울보다 낮은 것 같은데 빛의 강렬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낮 땡볕에 나와 있으면 바로 쓰러질 것 같은 강렬함이다. 낮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제주는 여행이나 쉼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제주는 나에게 관리와 노동이란 새로운 미션을 부여한 듯하다.


실제 지내면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나 완료되지 못한 것을 해결해야 했다. 비어있는 나머지 땅은 어찌해야 할지, 실제로 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관리 범위, 하나하나 공간 비품을 어디까지 비치해야 할지 등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일본의 비에이/후라노에서 본 또 남프랑스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본 라벤더를 심을지, 고즈넉한 청보리를 심을지. 나의 손자들을 위한 오두막집을 지을지 멋진 연못을 지을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진다.


나의 꿈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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