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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탈옥을 꿈꾼다

세뇌의 기술 마지막 이야기

by 애들 빙자 여행러

어느 볕 좋은 주말 오후였다.

나는 그날도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건조하게 병실 TV를 보고 있었다.


이번 주 병간호는 내가 맡기로 했다. 식사는 빵이나 병원 주변 식당에서 대충 때우고 있었다. 어떤 채널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TV에서 <쇼생크탈출>을 하고 있었다. 극장에서 한 번 본 적은 있었지만 계속 눈길이 갔다. 주인공 앤디의 활약으로 야외 노동을 하러 나온 죄수들이 땡볕 아래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쩌면 그 죄수가 나 같아서 몰입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맥주가 당기기도 했다.


영화 <쇼생크탈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이다.

특히나 주인공 앤디가 절치부심하며 온갖 노력과 지략으로 마침내 탈옥하여 나와 비가 오는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는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회사가 가끔 영화 속 감옥으로 느껴지곤 했다.


나도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누구나 회사에 완전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회사는 항상 개인에게 도전 기회를 제공한다. 때로는 자신보다 못난 경쟁자가 자신을 밟고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업무지시나 어이없는 목표 설정 등 회사는 일반적으로 개인을 열받게 만든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가끔 멋지게 사표를 내는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멋진 사표는 무엇일까. 아무리 내가 필요하다고 사정해도-근데 회사는 일반 개인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미련 없이 떠나는. 복권에 당첨되어 더 이상 돈을 벌 필요가 없다던지. 참고참고 항상 깨지다가 어느 날 사표를 던지며 오픈카를 타고 떠나는. 골탕 같은 건가. 뭔가 남겨진 동료들이 황당한 표정을 보는 것이 멋진 사표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앤디의 친구 레드가 멕시코의 어느 해안가 마을로 앤디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끝없이 이어진 해안가에서 앤디는 아주 편안한 차림으로 작은 배를 수리하고 있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편안한 장면이다. 나의 마지막 모습도 앤디와 같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오늘도 탈옥을 꿈꾼다.


회사 생활이 힘겨울 때, 누군가와 갈등을 빚을 때,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누를 때, 나는 책상 위로 몸을 숙이고 눈을 감는다. 여기는 감옥이고 난 탈옥을 위해 오늘도 벽을 돌로 갈고 있다.


커다란 내 앞의 벽은 나의 미래에 대한 준비와 투자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파내려 가고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난 내 가슴속의 사표를 내고 멕시코가 아닌 제주의 바다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 앤디 아닌 나는 앤디의 친구 레드가 누가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탈출의 마지막 비 내리는 그날은 언제일지도 궁금하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자. 어떤 영화도 결국엔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고 마지막 엔딩을 장식하는 주인공일 것이다. 그 영화가 해피엔딩일지 아니면 새드엔딩일지는 모르겠다.


어떤 경우라도 어두운 극장에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당신이 열연한 그 영화가 그 관객의 마음에 작은 떨림을 주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어떤 영화의 주인공일지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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