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 25일(20만 9천원)
2월 22일 - 25일(20만 9천원)
어린이 카시트 판매에 이어 어린이 행사알바를 지원했다. 극심한 아동알러지에 괴로워하면서도 침착한 척 근로계약서를 쓰는 내 자신이 안쓰럽기만 하다.
며칠전 메일로 근로계약서를 보내왔다. 당연한 건데 안 쓰는 데가 하도 많으니까 근로계약서를 보내온 것만으로도 애정이 생기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근로계약서에는 주식회사 탐앰엔씨라고 써있었지만 알바일기를 쓰다가 찾아보니 그런 회사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뭐가 급하셨길래 계약서에 몇 차례나 등장하는 '갑'의 명칭을 모조리 틀리게 적으셨는지 모르겠다. 정확한 명칭은 주식회사 탄앰엔씨. 지금까지의 알바일기는 역동적인 알바시장에서 스스로 느낀 걸 적어두고 기억하려고 썼지만 이번 알바일기는 온전히 이 회사 흉보기 위해 적는다.
-
22일 3시간 짜리 교육시간. 알바라고 뽑아놓은 인원수만 해도 꽤 큰 규모의 행사라는 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교육시간이라고 잡아놓은 세 시간은 유니폼인 노란 조끼를 몸에 맞춰보는 시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애초에 교육장 안내부터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상당수의 알바들은 건물 앞에서 무작정 대기하다가 교육을 미처 듣지 못했다. 그래도 그냥 진행한다;;
국민안전처와 현대자동차에서 준비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박람회라는데 체험교육 위주로 진행되다보니 알바들의 주된 역할은 몰려오는 아이들을 차례차례 줄 세우는 거란다. 모든 인원을 체험부스별로 하나하나 배치하고 멍하니 세워놓는다. 영양가도 핵심도 없었던 교육 덕분에 원래 예정했던 3시간을 못 채우고 절반은 일찍 귀가시킨다. 남은 절반을 모아 접수할 때 사용한다는 태블릿 교육을 한다.
앞에서 이야기하는 직원분 말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장한 행사 총괄이라는 사람이 직원 한 명을 붙잡고 왜 이렇게 일찍 보냈냐며 잔소리를 시전한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앞에서 교육하는 분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행사 총괄은 당연하다는 듯 내일은 첫날이니까 30분 일찍 와달라고 하길래 나도 손을 들고 당연하다는 듯 그럼 추가 수당주냐고 물어본다. 멈칫대다가 자기들끼리 아이컨택을 하더니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나저나 고용노동부에 확인해보니까 휴식시간은 의무지만(4시간 30분 / 8시간 1시간) 휴식시간에 대한 급여는 의무가 아니라고 해서 좀 충격을 받았... 우리나라 시급이 그냥 똥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 개똥이었구나 싶다.
-
일단 알바들을 일찍 불러내면 뭔가 정리가 될 줄 알았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돌아다니는 직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직원 한 명이 와서 어제했던 태블릿 예약시스템 교육을 테스트 해보자며 번호를 눌러보라고 한다. 가볍게 톡톡 눌렀더니 좀 번호를 적극적으로 누르라고 이야기한다. 황당해서 도대체 태블릿을 적극적으로 누르는 건 뭐냐고 물어보니까 무시하고 말을 돌린다. 물론 바쁘고 정신없는 건 알겠는데 첫날부터 무너지던 직원들의 멘탈은 하루하루 더 파괴되어갔다.
행사 시작 1시간만에 대행사 측에서 준비한 태블릿 예약시스템은 정말 놀랄 정도로 완벽하게 망했다. 박람회장을 찾은 부모님들의 눈꼬리는 올라가고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알바들의 미봉책에 진노한 몇몇 부모님들은 욕설을 쏟아내시기도 한다. 다급해진 직원 한 명이 다가온다. 근데 대행사 이사라는 이 사람은 말의 맥락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인간인데 횡설수설 자기도 이해 못 할 이야기를 쏟아내놓고 이해했냐고 몰아세우는 사람이다. 솔직하게 전혀 이해 못 하겠다고 했더니 목소리를 높여대면서 더 이해할 수 없게 설명한다. 아 이 아재는 이 상황에 별 도움도 안 될 뿐더러 그냥 답이 없는 것 같아서 최대한 눈을 착하게 뜨고 "아! 이제 이해됩니다." 했더니 끄덕끄덕 만족하면서 다행히 꺼져주셨다.
처음엔 부실한 예약 시스템 때문에 분노를 터뜨리시는 엄빠들이 사실 무섭기도하고 밉기도 했는데 점차 이해가 된다. 태블릿을 썼다가 오전부터 흔들리던 행사는 급히 번호표 시스템으로 전환했고 오후에도 또 한 번 완벽하게 망했다. 여전히 정리가 안 되는 어수선한 장내덕분에 오늘 하루 여러 어린이들이 울고, 여러 부모님들이 혈압을 높이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방문객에게 화를 가득채웠던 지옥같은 행사가 끝나고 같은 부스에서 일하던 알바들과 이렇게 망한 행사 알바를 하는 건 처음이라고 감탄하고 있는데 흩어진 알바들을 다 불러 모은다. 아까 그 이사 아재가 앞으로 등장해 아무말 대잔치 시작한다. 소름끼칠 정도로 여전히 요점도 흐름도 없는 아무 말을 계속 듣고 있으려니까 가슴 한 켠이 체한 것 마냥 답답해진다. 나혼자 일장연설을 마치시곤 자신이 강조한 세 가지가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 조용해진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아듣지 못 했을 거라고 누가 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스스로는 진짜 모르는 것 같다.
일어나는 일에 좀 능동적으로 대처하자며 연설이 진짜 끝났다. 원하시는 능동성을 발휘해 알바들이 오늘 행사진행에서 이해가 안 되는 점을 우수수 쏟아낸다. 특히 번호표로 행사가 더 복잡해지고 컴플레인도 더 들어오는데 왜 해야하느냐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도 행사총괄은 위에서 그렇게 지시했으니 우린 그렇게 하면 된다면서 그렇게 하루를 매듭짓는다. 팀장급 알바한테 들어보니 번호표 기계를 쓰는 조건으로 주최사에 이미 그 비용을 받은 것 같단다.
둘째 날에도 여전히 엄빠들의 컴플레인에 꼼짝없이 두드려 맞고 있다. 침착한 직원 한 분이 등장하신다. 목소리부터 무척 나긋나긋하셔서 뭔가 이 상황을 해결해 줄만한 기대를 품게 만든다. 목소리를 높여오는 상대에게 같이 소리를 높이는 건 행사진행에 도움이 안되는 걸 잘 아시는지 절대 흥분하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엄마 한 분한테 잡혀 길게 얘기를 하시더니 슬쩍 "이 분만 바로 들여보내주세요." 하고 총총총 사라진다. 이렇게 융통성이라는 걸 제멋대로 쓰고 가니까 그 꼴을 보는 다른 엄마들의 원성은 우리 알바들을 향한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자신은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왜 자기가 싼 똥을 우리가 치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내려주는 지침대로 하다간 하루종일 욕만 먹을 것 같아서 알바팀장님이랑 알바들끼리 합의한 방향으로 오후 일을 시작한다. 어김없이 방문하신 그녀는 "여기 부스에 계신 분들이 일처리를 너무 못해요!" 라며 따끔하게 혼내시더니 종이 한 장을 펼치고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일렬로 서서 경청하던 알바들은 '아... 이대로 하면 또 망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우리끼리 눈빛을 주고받아 무시하고 우리끼리 알아서 하기로 합의를 본다. 두 시간 뒤 다시 온 그녀는 "어때요. 제가 말한대로 하니까 제대로 돌아가죠?"라고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해달라고 대놓고 요구하고 있었고 나는 똥씹은 얼굴로 "아 정말 그러네요." 라고 대답했다.
이 놈의 회사는 대체적으로 용어 통일부터 안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그 많은 인원이 한번에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전달하려면 적어도 공통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직원마다 하는 말이다 제각각이다. 그러니까 결국 자기들끼리도 소통이 안 되고 직원마다 지시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국민안전처든, 현대자동차든 이 회사랑 계약한 담당자는 진땀이 아니라 피땀을 흘리고 있을 것 같다. 방문하는 엄빠들의 말씀에 따르면 요며칠 이 허접한 행사에 대한 이야기로 맘커뮤니티가 아주 뜨겁단다.ㅎㅎ
-
뭐 하나라도 더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님들의 마음이니 그런 기준과 상관없이 아이들을 밀고 들어오시긴 했지만 체험장 마다 체험할 수 있는 아이들의 연령이 정해져있었다. 다섯 살 아래 아이들은 너무 무서워하고 울음을 터뜨려서 줄을 선 엄빠들께 다섯살 아동부터 탈 수 있다고 안내를 해드린다. 그 순간 우리나라의 다섯 살 아동인구가 무수히 늘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도대체 2013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줄을 선 모든 아이들 모두 다섯 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말을 할 줄 모르는데도 손바닥을 쫙 펼쳐 내민다. "저 아저씨가 물어보면 다섯 살이라고 해!"라는 소근거림이 들려온다. 이렇게 아이들은 인생 첫 거짓말을 배운다.
-
아이들을 하나하나 줄을 세우는데 엄마 한 명이 꽥 소리를 지른다.
"저기요. 왜 우리 애를 안 봐요!"
"아 제가 여기 줄을 세우면 이쪽에서 자원봉사자 분들이 옷을 입혀..."
"아니! 우리 애가 줄 서있는 거 잘 봐줘야 할 거 아니에요!"
"여기 저도 있고 자원봉사자 분들도 계셔서 너무 걱정 안하.."
"아니! 다른데 보느라 애가 줄을 잘 못 서있잖아요! 잘 안내를 해줘야죠!"
"차례대로 다섯 명씩 묶어서 순서대로 입장하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아니!!! @#$%^&*() #$%^&*(*"
그 엄마의 아이는 줄에서 살짝 벗어나 전광판에 나오는 만화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넘어지지 않았다. 위험한 물건에 가까이 있지 않았다. 다치지 않았다. 어딘가에 부딪히지 않았다. 다른 아이에게 새치기를 당하거나 줄이 뒤바뀌지 않았다. 나는 죄송하지 않았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드려야 하느냐는 내 말에 그 엄마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지 않으면 이 화풀이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두 손을 모았다. 내가 숙일 수 있을 만큼 고개를 깊게 숙였다. 눈을 깔았다. 입꼬리를 최대한 내렸다. 그 엄마는 자리를 떴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온다. 우리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