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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의자포U Oct 27. 2024

16. 살아있는 언어로 말하려면


말에는 사전에 실리지 않은 수많은 의미가 있다.

- 비트겐슈티인



콩을 먹고 싶다면 콩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나 콩을 심는다고 항상 콩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은 콩을 심으면 콩이 나지 않습니다.


‘세상과 사람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그 원하는 것에 맞는 언어를 들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죽은 언어를 건넨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다혈질인 아버지에게, 제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화내면서 말 좀 하지 마세요.”


그 말에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그때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비난했습니다.

'지금도 화를 내고 계시잖아요!!!!!'



돌아보니 “아버지, 화내면서 말 좀 하지 마세요.”라는 저의 말속에도 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죽은 언어입니다.

“왜 당신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나요?”라는 말에는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자기주장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해야지!”라며 아이를 나무라는 부모의 말속에는 친절함이 없고, “공부 좀 해라.”라는 말속에도 공부를 하고 싶게 하는 동기 부여가 없습니다.


모두 죽은 언어입니다. 나는 오른쪽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들고 있지만,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화살표가 왼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화살표를 열심히 흔들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왼쪽으로 갑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원망합니다.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살아있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요? 내 말이 생생하게 살아서 상대에게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상황을 통해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봅니다.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떼를 씁니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없습니다. 안 된다고 하니 아이가 길에 드러누워 떼를 씁니다. 이때 부모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몇 가지가 있을까요?


‘아이스크림을 사준다와 사주지 않는다.’ 이렇게 2가지라고 생각했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4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상황 1 :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음 +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음


“아이고 이놈의 자식,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쎄? 엄만 갈 테니까 니 맘대로 해.” 


이렇게 말을 하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척을 합니다. 아이는 결국 엉엉 울면서 엄마의 뒤를 따릅니다.



#상황 2 : 아이스크림을 사줌 +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음


결국 떼쓰는 아이를 어찌하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엄마가 말합니다.

“아이고 이놈의 자식,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쎄? 그것 먹고 어디 아프다고만 해봐. 엄만 몰라.”


(나중에 아이의 감기가 심해지면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게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어. 먹지 말라고 했잖아. 하여튼 엄마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



#상황 3 :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음 + 아이의 마음을 이해함


길바닥에 누워 떼쓰는 아이 곁으로 갑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차분합니다. 

“그래,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싶지.. 그래도 안 돼.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

아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의 목소리와 태도는 한결같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아이의 울음이 잦아듭니다.


“다음에 감기 다 나으면 아이스크림 먹자.”

“응, 엄마. 감기 나으면 다음에 꼭 사줘야 해.”

“그래, 얼른 감기 낫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오자.”



#상황 4 : 아이스크림을 사줌 + 아이의 마음을 이해함


길바닥에 누워 떼쓰는 아이 곁으로 갑니다. 부모의 목소리는 차분합니다. 

“그래,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싶지.. 그래도 안 돼.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

아이의 울음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도저히 아이를 기다려줄 수 없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갑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이왕 먹는 것 맛있게 먹고 감기 심해지지 않게 잘하자.”

“응”


(나중에 아이의 감기가 심해지면 엄마는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엄마가 사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 생각이 짧았네. 미안해.” 그리고 아픈 아이를 돌봐줍니다.)



이렇게 4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줘야 하는지 사주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을 사주냐 사주지 않느냐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상황 1, 2는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황 3, 4는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었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상황에 따라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도, 사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도 괜찮습니다.


이처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살아있는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말을 하는 것은 마치 미국에 가서 한국 화폐로 물건을 사려는 격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내가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의 대화로 돌아가 봅니다. 살아있는 언어로 바꿔 말해 봅니다.


“아버지, 화내면서 말 좀 하지 마세요.”라는 말 대신

“아버지, 속상한 일 있으셨어요?”라고 다정하게 말하면 어떨까요?


“왜 당신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나요?”라는 말 대신

“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라며 상대를 인정하는 말은 어떨까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해야지!”라는 말 대신에

“기분이 어때?”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 어떨까요?


“공부 좀 해라.”라는 말 대신

“수고 많지. 힘들지?”라며 격려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살아있는 언어를 연습해 갑니다.




<4음절 정리>


같은말을 하더라도

같은말이 아니라네

살아있는 말을해야

내뜻바로 전해지네


화내지마 말을듣고

상대마음 더화나고

공부해라 말을듣고

공부하기 싫어지며

친절해라 말을듣고

불친절을 느낀다면

바로그말 죽은언어

건네봐도 소용없네


원하는것 얻으려고

떼를쓰며 우는아이

원하는것 줄까말까

고민되는 부모마음

중요하건 아이마음

이해하는 것이라네

아이마음 이해하면

모든선택 괜찮다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온말이

살아있는 언어되어

상대방을 움직이니

이해하는 마음위에

나의말을 건네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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