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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29. 2022

네!? 초보운전이라고요?

이번 주 내내 둘째 어린이집의 방학이라 하루 출근하고, 하루 쉬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남들은 격일로 일하니 얼마나 좋으냐 하지만, 현실은... 출근도 육아도 만만치 않아요. 그런데 저번 주 주말에 어린이집 엄마 중에 한 분이 연락을 해왔어요.     


"@@이 어머님 혹시 다음 주에 휴가 내시나요?"     


뜻밖의 연락이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웠어요. 어린이집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했던 것이 전부였던 사이라 만남 자체가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덜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답을 했지요.     


"네! 저 *요일에 쉴 것 같아요."     


그렇게 성사된 번개 물놀이. 장소는 우리 동네 외각에 위치한 바닥분수가 있는 생태공원이었어요. 처음 연락한 엄마는 동네에 있는 키즈카페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지만 여러 번 가기도 했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 내키지 않았어요. 그곳을 가느니 차라리 물놀이가 낫겠다 싶어서 초보운전인 제가 무려 외각에 있는 공원에 가자고 제안을 한 거죠. 두둥.     


초행길을 갈 때면 극도로 긴장하는 저, 하지만 최근에 아주 조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어요. 일주일 전쯤 수강한 직무연수를 집에서 왕복 3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들어야 했는데 3일을 무사히 다녀왔거든요. 그것도 둘째 날에는 10분 더 늦게 나가고 셋째 날에는 20분 더 늦게 나갔는데도 강의 시간에 늦지 않았어요..     


스스로 반경 10km 이내의 초행길만 갈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15km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남모르게 세워두었던 장벽이 하나 무너진 느낌, 그리고 무너뜨렸다는 뿌듯함. 더불어 생긴 자신감. 역시 모든 건 해봐야 아는 것이고, Practice makes Perfect(연습만이 살길이다.)라는 말은 진리예요.     

그때의 자신감을 가슴에 가득 채우고 물놀이장으로 출발했어요. 네비를 찍어보니 11km. 음, 양호하군. 물론 아이가 뒤에 타고 있고 시내를 통과해야 하지만 차분하게 천천히 가면 할 수 있겠어! 가는 길은 아주 순조로웠어요. 뒤에서 흥분한 아이가 쫑알쫑알 떠들어서 정신이 사나웠지만 15분 정도가 흐르자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자, 이제 내 세상이다! 조금씩 줄어드는 거리에 안도감을 느끼며 거의 도착했을 쯔음. 갑자기 네비가 멈췄어요!     


네비가 멈췄다.
네비가 멈춘 것이다.
갑자기 빨간 줄이 안 보인다.
화면상으로 내가 없는 길로 들어섰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런 시골 도랑길에 날 멈춰두고 네비 너는 왜 갑자기 정신을 잃은 거야?
안돼!!!!!!!!!!!!!!!!!!!!!!!!!!!!!!!!!!!!!!!!!!!!!!!!!!!!!!!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어요. 한적한 시골 도랑길이라 차량통행이 별로 없어서 제 차가 길 중간에 섰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이었죠. 문제는 네비가 길을 못 찾고 있는 것이었어요. 결국 게으름이 이 사달을 만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올해 초에 네비를 업그레이드하려고 동료분께 칩을 빌렸었어요. 그런데 업그레이드 파일을 네비가 아니고 제 컴퓨터에 저장한 거 아니에요! 하..ㅜㅜ 동료분께서 다시 빌려줄 테니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라고 한 것을 내가 혼자 운전해서 출퇴근 말고는 어딜 가겠어, 하는 생각에 괜찮다고 사양했었어요. 그리고 결국 업그레이드 시기를 한참 놓친 네비가 이 시골길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죠.  

   

하... 막막했습니다. 전화해볼까? 남편한테? 남편한테 전화한다고 뭐가 달라지니. 게다가 지금 타지로 출장 간 남편이 전화를 받을 리도 만무한데. 그럼 만나기로 한 엄마에게 전화해볼까? 그런데 전화해서 여기가 어디인지 설명할 수 있겠어? 제가 지금 생태공원 근처 어느 논 중간 도랑길인데요..라고 할 거니?     


결국 그동안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버티면서 설치하지 않았던 네이버 내비게이션 어플을 깔고야 말았어요. 사실 그동안 남편의 수차례의 권유가 있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다운로드하기가 싫었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깔고. 출발지 도착지 입력하니 이 똑똑한 어플이 안내를 시작했어요. 그 순간 진짜 제 차 네비가 꼴도 보기 싫었어요. 확 꺼버릴까. 하다가 아직 네이버 네비 화면이 익숙하지 않아 속도라도 확인하자는 마음으로 켜 두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가 제일 꼴찌로 물놀이장에 도착했어요. 이미 지붕이 있는 정자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와 테이블도 설치해놓은 엄마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신나게 물놀이하고 김밥과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운전 얘기가 나왔어요. 가장 먼저 도착한 엄마가 자기는 초보운전이라 주차가 걱정되어 일찍 출발했다는 얘기를 하자 다른 엄마도 자기도 초보운전이라는 거예요. 동질감이 퐁퐁 솟아나며 너무 반가워서 나도 초보운전이요!라고 했더니 갑자기 엄마들의 눈에 동그래졌습니다.     


"네? 초보운전이라고요?"


"네....."     


 엄마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놀란 토끼눈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었지요. 초보운전이면서 여기까지 와서 물놀이를 하자고 제안한 거예요? 그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더 이상 긴말은 하지 않을게요.라는 배려의 눈빛이 느껴졌어요.ㅋㅋㅋㅋ     


장장 세 시간 반의 물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네이버 네비가 길을 잘 알려주었는데 공간지각 능력이 형편없는 저는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어요. 네비에 찍힌 거리는 22km. “헉! 왔을 때보다 10km 늘었네. 하.. 돌아버리겠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지만 이미 도로 한복판이라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전화위복이 일어났어요! 외각에 차가 별로 없어서 삭 달리다 보니 30분 만에 집에 도착한 것이에요. 사실 30분도 오래 걸린 것이지만 갈 때도 시내 통과하느라 기어가서 30분 넘게 걸린 거 생각하면 아주 양호했죠.     


이렇게 또 한 번의 경험이 쌓였어요. 이 경험으로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두 아이를 다 데리고 그곳에 한번 더 가보려 해요. 한번 가봤으니 이제 헤매지 않겠지요...? ㅋㅋ     


초보운전 표시는 종이가 바스라 질 때까지 붙이고 있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동 반경을 늘리다 보면 초행길도 더 편안히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최종 목표인 고속도로까지 갈 수 있도록 앞으로 저의 무모하고도 용감무쌍한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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