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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Oct 10. 2022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셀프주유, 끝내 이루었다!

정말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어요. 물론 굳이 출근하기 싫은 날을 특정 짓는다는 것이 직장인으로서 의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중에서도 진짜 오늘만큼은 죽어도 출근하기 싫을 만큼 절박한 날. 또다시 찾아온 그날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도 쉽게 이루어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전날 저녁 아이들을 하원 시켜 놀이터에서 조금 놀게 한다는 게 예상보다 많이 늦어졌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아이들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놀이터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아이가 집에 가기를 거부했거든요.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중요한 일이 진행 중이었기에 마음은 심란하고 몸도 힘들어 당장 집에 가서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나도 같이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하지만 도저히 아이의 손목을 억지로 끌고 갈 수가 없었어요.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집에만 있었고, 더위가 좀 가시는 듯하더니 장마가 시작되어 비 내린다고 밖에 나갈 수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장마 지나서 이제 좀 나가서 놀아볼까 했더니 장마 때보다 더 많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늘 유치원 학원 집을 반복하던 아이가 오랜만에 바깥에서 친구들을 만나 저렇게도 좋아하는데, 그 기쁨을 엄마인 제가 제 손으로 차마 깨트리기가 너무 미안했거든요. 

     

그래서 맘껏 놀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 이미 늦어버렸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신속하게 아이들을 씻기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어요. 제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명치가 꽉 조여 오는 듯한 느낌과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 세상에서 가장 싫은 두통이 시작된 거예요. 너무 피곤해서 소화가 안되나 싶어 소화제를 한 병 마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남편도 없던 터라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다는 건 엄두조차 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계획대로 잠자리에 들었죠.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르게 시간은 흐르고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어요. 어제의 상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다시 주저앉았죠. 뱃멀미를 하는 듯한 울렁거림이 너무 심해 결국 친정엄마께 도움을 청해 아이들을 등원시켰어요. 소화제를 다시 한번 마셨더니 조금 가라앉은 듯하여 출근길에 올랐어요. 마음속으로는 100번도 더 넘게 병가를 신청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출근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조금 서러웠어요.      


사무실에 도착해 가장 시급한 일을 마무리 짓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몸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 컨디션으로 운전은 무리였어요. 그래서 휴게공간에서 잠시 누워있기로 했어요. 가시적으로 아픈 곳은 없고, 열도 안 나는데 속만 계속 안 좋은 상황. 다시 소화제를 한병 들이켰더니 또다시 일시적으로 속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조퇴를 내고 차에 올라탔어요.

     

그런데 시동을 켜자마자 들리는 전혀 반갑지 않은 소리.     
"딩딩딩"     


바로 연료 부족을 알리는 소리였어요. 설움이 폭발하며 "왜 하필 지금이야!!!!!!!!!!!!!!!!!!!"라고 혼자 소리치는데 눈물까지 찔끔 나더군요. 하지만 회사 주차장에서 울고 있을 수도 없고 일단 출발했어요. 가면서 고민했죠. 바로 앞에 있는 비싼 주유소에서 늘 그랬듯이 3만 원만 주유하고 일단 집에 갈까, 조금만 더 가면 셀프주유소가 있는데 이 참에 한번 도전을 해볼까. 고민은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어요.          


"몸도 안 좋은데 굳이 내가 셀프주유를 이 시점에 도전할 필요가 있나, 연료 부족 경고등도 이재 켜졌으니 집까지는 충분히 갈 거야. 그냥 가자."     


 그런데 자꾸 연료 부족 경고등에 눈이 갔어요. 주황색 불빛이 마치 지금이 기회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죠. 그래서 다시 고민했어요.     


"그래, 셀프주유소 앞에 갔을 때 경고등이 깜박거리기 시작하면 주유한 번 해보고 아니면 그냥 집까지 간다!"     


셀프주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엄청 컸던 걸까요. 잠시 동안 울렁거리던 속도 잠잠해졌고 지끈거리던 머리도 진정이 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셀프주유소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어요. 마침내 셀프주유소를 앞에 두고 직면한 마지막 신호. 빨간불이라 대기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경고등은 그때까지도 깜박이지 않았어요.      


"오늘은 날이 아닌 것이다 하하하하하. 가자!"     


하고 초록불에 기분 좋게 액셀을 천천히 밟았는데 그 순간!     


"깜박깜박깜박"     

"..."     


경고등이 깜박이기 시작했어요! 이럴 수가!     


"안돼!!!!!!!!!!!!!!!!!!!!!!!!!!!!!!!!!!!!!!!!!!!!!!!!!!!!!!!!!!!!"     


사실 누구에게 공언한 약속도 아니기에 그냥 지나쳤어도 아무 상관없었을 거예요. 물론 안전을 생각한다면 어디에서든 주유를 하는 게 맞지만 굳이 셀프주유소에서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이 주유소를 지나도 자동차 전용도로만 통과하면 널린 게 주유소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주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긴급출동 사건 이후 주유소 위치를 알아두었어요.) 하지만 문득 용기가 생겼어요!      


내가 소화제 한 병 먹고 이 죽을 것 같은 몸을 끌고 출근도 했는데 셀프주유 처음도 아니고(혼자 가는 건 처음이긴 하지만) 이까짓 거 못하겠어?     


그래서 과감히 방향을 틀어 셀프주유소로 들어갔어요. 당당히 들어갔지만 주유기 앞에 그려져 있는 칸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더라고요. 차도 앞에 큰 트럭 한 대와 그 옆에서 유유히 주유하고 계시는 아저씨 한분밖에 없었는데 그 칸에 들어가려고 꿈틀꿈틀, 얼마나 꿈틀댔나 몰라요. 겨우 칸 안에 들어가서 주치 하고 카드 꺼내서 밖으로 나갔어요. 비록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차의 주유구 열고, 주유기 화면 앞에 비장하게 딱 섰죠.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면에서 시키는 대로 주유 종도 선택하고 카드도 넣고 주유건 딱 들어서 주유구에 딱 넣으니 주유가 시작되었어요!    

 

"오오오오오오 된다 된다 된다!"     


드디어 성공했다는 기쁨에 한참을 주유건을 들고 있다가 문득 남편이 말해준 "핀"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핀을 세우고 주유건을 놓아봤죠. 그랬더니 진짜 주유건이 혼자 잘 꽂혀있더라고요.      


"와 아아아 아아아 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초보 셀프 주유러는 혹여나 주유건이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한동안 주유건에서 눈을 못 뗐답니다. 그렇게 한참을 주유건 멍을 때리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앞에 큰 트럭 아저씨가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급속도로 불안해졌어요.     


'뭐지? 나 뭐 잘못했나?'

'혹시.. 변태인가?'     


태연하게 다시 주유건을 바라보는 척했지만 급속도로 초조해졌어요. 하필 지나가는 차도 많이 없고 주유소에는 아저씨와 저만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큰 트럭에 기름이 다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면서 아저씨가 많이 심심하셨던 것 같아요. 게다가 뒤에 들어온 차에서 내린 딱 봐도 어리바리해 보이는 여자운전자가 계속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쳐다보게 되었겠죠.      


때마침 주유기가 말을 걸었어요.     

"주유가 완료되었습니다. 천 원 단위로 끊으실 건지, 리터 단위로 끊으실 건지 선택해주세요."     

"응?"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다행히 화면 속 글자를 차분히 읽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더군요. 그래서 리터 단위로 끊기로 하고 주유가 마무리되길 기다렸어요. 마침내 주유 완료! 마음에 뿌듯함이 차올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허무함도 밀려왔지요.     


그동안 셀프주유로 마음고생했던 시간 때문 에라도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허무함보다는 뿌듯함에 더 집중하기로 했어요. 뭐가 어찌 되었든 저는 마침내 셀프주유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극복하고 주유에 성공했으니까요!     


하지만 웃기고도 슬픈 사실은 주유를 다 끝내고 주유구가 잘 닫혔는지 몇 번이나 확인해놓고도 운전하면서 혹여나 기름이 줄줄 새서 차에 불붙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는 거예요. 후방카메라로 차 뒤편을 몇 번이나 확인했나 몰라요. 이렇게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제가 어쩔 수 없이 운전자가 되더니 운전자로서 아주 기본적인 것들도 유별나게 유난 떠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하나하나 해낼 때마다 제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고 셀프칭찬을 해주기로 했어요.      


저라도 알아줘야 앞으로도 계속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은 눈감고도 하는 것들을 너는 이렇게도 긴 시간을 들여 겨우 해내고 있냐?라고 생각하면 끝내 운전대를 놓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를 칭찬합니다.  

   

"JA야,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깨지 않고 용기를 내서 셀프주유소로 들어간 널 칭찬해. 여러모로 불안하고 당황스러웠음에도 끝내 주유를 성공한 것도 축하해. 앞으로도 운전을 하면서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지금처럼만 하면 다 무사히 지나갈 거야."

  

마지막으로 셀프주유에 한번 성공하고 나니까 그 전에는 기름 칸이 한 칸 한 칸 줄어들 때마다 기름값 걱정에 한숨만 쉬었는데 이제는 다시 셀프주유소에 가서 당당히 주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흥이 나요. 이 흥이 계속되면 가정경제에 굉장한 타격이 되겠지만 당분간은 즐겨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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